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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잔 보일의 'Someone To Watch Over Me'
    책|만화|음악 2011. 12. 25. 17:45

    그녀의 등장은 이제 신화가 되었다. 그녀의 앨범들은 전설이 될 기세고! 2009년 영국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한 이 48세의 우중충한 노처녀 지원자는 자신의 촌스럽고 볼품없는 외모와 상관없이 엄청난 보이스를 들려주었고, 마법처럼 단박에 모든 이를 사로잡았다. 그야말로 당당한 미운오리새끼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백조로 탈바꿈하는 그 놀라운 광경을 전세계가 지켜본 셈이다. 유튜브와 넷이란 새로운 구전을 통해 널피 퍼진 이 신데렐라 스토리는 수잔 보일이 만들어낸 기회의 동화이자 묻혀질 뻔한 재능의 성공담이다. 그녀는 전세계적으로 1400만장이란 판매고를 기록했고, 첫 앨범이었던 'I Dreamed a Dream'은 전곡이 리메이크인 랫팩 앨범임에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와 영국 차트 1위를 동시에 달성하며 유럽 전역을 비롯한 일본과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었다. 그 다음 해인 2010년에 발매된 2집 'The Gift' 역시 크리스마스 컨셉이 강했음에도 또 한 번 영미권 차트 1위를 동시에 석권하며 그 열풍이 거품이 아님을 입증해냈다. 전세계적으로 호응을 얻은 건 물론 소포모어 징크스까지 스스로 날려버리며 '오디션스타 드림'을 구축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과 목소리는 꿈의 상징이자 희망의 또 다른 닉네임이 되었다.
     
    물론 전세계 그 어떤 가수도 이처럼 단기간에 이룩하지 못한 그 놀라운 성공에 시기와 경계하는 이도 없진 않다. 단아하면서도 기품있는 목소리에, 고전적이고 안정적인 발성, 아마추어답지않게 능숙하게 필링을 소화해내는 능력은 인정하지만, 이 정도로 이슈화되고 신드롬으로 발전할만한 완성도의 앨범은 아니라는 중평이다. 게다가 1집 2집 모두 기존 스탠다드 팝과 인기있는 민속음악, 캐럴과 뮤지컬 히트 넘버들을 재활용했다는 점에서 익숙하지만 신선도나 매력이 떨어지는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그녀의 카랑카랑하면서도 굵직한 믿음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하는 어정쩡한 편곡도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이들의 공감대와 동질적인 호소력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그녀가 가진 작지만 위대한 힘의 크기가 느껴지는 건 아닐까. 또 응원하고 박수치며 그 노력의 결실을 같이 향유하고 음미할 수 있다는 그 연대의 묘한 쾌감이 기존의 가수들에게서 느끼지 못한 대리만족 심리를 충족시키는 경향도 있다. 더욱이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이번 수잔 보일의 3번째 앨범 'Someone to Watch Over Me'를 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지난 앨범에선 전혀 보이지 않았던, 그녀만의 오리지널 곡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You Have To Be There'는 ABBA의 두 남자 멤버 베니가 작곡하고 비요른이 가사를 붙인 1995년 스웨디쉬 뮤지컬 [Kristina from Duvemåla]에 나온 곡으로 그 특유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전개가 인상적인 노래다. 스케일이 느껴지는 오케스트라의 위용도 멋지지만 꼿꼿하니 진취적으로 퍼져나가는 수잔의 청아한 목소리와 담백한 기개, 그간의 스토리가 어우러지며 멋진 임팩트를 선사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 삽입돼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던 히트팝 'Unchained Melody'가 그 뒤를 잇는데 원곡의 애절한 느낌과 달리 꽤 새롭고 독특한 시도로 변신을 알린다. 최대한 감정을 억제해 슬로우 템포로 피아노 반주에 부르던 수잔은 하일라이트에 이르며 소름끼치는 파워를 오케스트라와 한순간에 일소시키며 단아하면서도 힘있는 발라드를 완성했다. 더욱 놀라운 변신은 그 다음곡인 디페쉬 모드의 'Enjoy The Silence'에서 나타난다. 이 뿅뿅거리는 시니컬한 일렉트로닉 팝이 이처럼 경건하고 신비롭게 다가올 수 있다니. 효과와 코러스를 덧입혀 그간의 수잔 보일 사운드와 차별화를 둔 변신과 시도가 인상적이다. 조니 미첼의 너무나 아름다운 'Both Sides Now'은 그 원곡이 가진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리는 방향에 주안점을 둔다. 악기 편성을 최대한 줄이고 보컬에 힘을 실어보이는 것. 그러나 고혹적이고 묵직한 조니와 달리 낭랑하니 청량한 수잔이기에 또다른 질감을 안긴다.
     
    어사 키트의 원곡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제프 버클리의 목소리로 더 잘 알려진 'Lilac Wine'은 그의 처연하고 허무하며 스산한 느낌과 달리 수잔 버전에선 조금은 따뜻하고 낭반적인 기운이 감돈다. 제프가 회한과 비애를 노래했다면 수잔은 반추와 기억을 달래고 있다고 할까. 같은 노래에서 느껴지는 이런 다른 질감의 방향성이 즐겁다. 회색톤의 신디사운드가 인상적인 뉴웨이브 'Mad World'를 선택한 건 앞선 'Enjoy The Silence'와 비슷한 전략처럼 다가온다. 그녀와는 전혀 매칭되지 않는 80년대초 스타일을 기타톤에 맞춰 이처럼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바꿔놓은 건 분명 독특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원곡의 비트와 파워를 제거하고 나른한 스트링과 속삭이는 보컬은 분명 그녀 전작들에선 찾아볼 수 없는 지점이다. 약관의 나이로 인상적인 데뷔 앨범을 낸 스코티쉬 싱어송라이터 파올로 누티니의 데뷔 앨범에 실린 'Autumn'을 리메이크한 'Autumn Leaves'는 제목이 조금 바뀐 것과 달리 이 앨범에서 원곡이 가진 감수성에 가장 비슷하고 가깝게 다가간 곡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기리며 만든 곡이라는 사연처럼 눈물 짓게 만드는 가사가 일품인 이 노래는 파울로의 까끌한 목소리만큼이나 울림을 주는 수잔의 비브라토 가득한 음색이 진솔하고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그간 그녀가 부른 곡들이 모두 리메이크와 전통적인 민속 음악이었다면 'This Will Be The Year'과 'Return'은 드디어 이번 앨범을 위해, 수잔 보일만을 위해 만들어진 오리지널 곡이다. 캐리 언더우드 등에게 곡을 준 미국 작곡가 조쉬 키어와 R&B 소울 싱어송라이터 에밀리 샌더가 공동으로 작업한 'This Will Be The Year'는 서정적인 매력이 듬뿍 담긴 뮤지컬 넘버스러운 발라드고, 클래시컬한 선율과 화려하고 웅장한 편곡이 돋보이는 'Return'은 그녀의 모든 앨범을 프로듀스하고 켈리 클락슨과 웨스트라이프, 일 디보 등을 매만진 바 있는 세계적인 프로듀서 스티브 맥이 직접 작업에 뛰어든 곡이다. 그녀가 오디션 쇼 프로에 나와 언급했던 뮤지컬 스타 일레인 페이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수잔의 멋드러진 보컬을 유감없이 뽐낼 수 있는 이 곡은 그녀의 색깔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프로듀서의 친절한 맞춤 선물과도 같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앨범 제목과도 동명의 'Someone To Watch Over Me'는 조지 거쉰의 너무나도 유명한 스탠다드 넘버. 프랭크 시나트라와 엘라 피츠제랄드, 스팅,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등 왠만한 가수들이라면 한번쯤은 불러봤을 명곡으로 빈티지한 노이즈와 피아노에 맞춰 그간의 색채와 달리 소울풀한 색깔을 짤막하게 들려준다. 다음 앨범에선 재즈 넘버들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도 있겠구나 그런 예고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스티븐 킹은 [쇼생크 탈출]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희망은 소중한 것이고, 소중한 건 절대 사라지지 않는 법이라고. 수잔 보일은 그 말을 몸소 실천했다. 이번 11월초에 발매된 수잔 보일 3집 역시 앞선 앨범들처럼 영국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차트 4위 등 세계 여러 곳에 상위권에 오르며 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녀의 인기가 현재 진행형임을 알리고 있다. 수수하지만 당당하게 꿈을 향해 달리는 그녀의 씩씩한 모습은 놀랍고도 아름다운 목소리와 겹쳐지며 대중들만의 작은 영웅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 경이로운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덧) 그리고 수잔 보일은 2009년 자신이 롤모델로 삼던 일레인 페이지와 같이 공연을 했다...
         뮤지컬 [체스] 중에서 주제곡 'I know him s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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