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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티 코알라의 '밝고 건강한 아침을 위하여'
    책|만화|음악 2011. 10. 19. 07:01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 무성의하게 대응하는 자신을 보며 반성한 적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의 오늘이 남들에겐 주어지지 않는 내일일지 모른다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충실하게 행동하라는 격언은 귓등으로 흐르기 일쑤. 귀차니스트인 내가 하루에 대해 조금의 경의라도 보인 건 일기를 쓴다거나 블로그 포스팅하는 게 고작이었다. 사진을 찍고, 단상을 끄적이다 보면 그날의 흔적을 조금이나 건지지 않겠나 하는 안일함이 딴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러다보니 결국 일기도 매너리즘에 빠져 그날 그날이 날씨를 제외하고 이하동문의 연속이고, 블로그의 포스팅 수는 점점 줄게 되었다. 이럴 때 음악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같은 나날이라도 다른 장르, 독특한 감성으로 하루를 불러 볼텐데. 어째 글이라는 놈으로 변화를 주려니 쉽지가 않다. 일기를 추리, 스릴러, 사극으로 쓸 수도 없고, 포스팅이 락과 메탈, 발라드 등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니. 문득 그런 의미에서 음악가들이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일상을 그들만의 스타일로 노래한 '마이티 코알라'가 부러웠다.
     
    '밝고 건강한 아침을 위하여'라는 아주 거창하고 건전한 새마을 운동 스타일의 모토를 1집 타이틀로 내걸은 '마이티 코알라'는 뛰어난 연주와 기깔난 편곡, 화려한 외모의 3단 콤보를 장착한 무적의 아이돌 밴드는 아니지만, 자신들 주변에 널려(?)있던 (가을방학의 정바비와 계피, 라이너스의 담요의 연진, 전자양, 9와 숫자들, 브로콜로 너마저 등등의) 뮤지션들처럼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자신들의 색채가 강한, 독특한 감성의 모던락 밴드가 되었다. '벨 앤 세바스찬'을 떠올리게 한다는 홍보 문구처럼 그들의 노래들은 대체적으로 달달한 멜로디에 밝고 순수하며 경쾌한 편으로, 포크며 챔버팝 스타일이고, 동시에 모던락과 로큰롤을 뽕짝시킨 활력 넘치는 사운드를 구사한다. 자신들의 꿈인 음악을 소중히 지키고 스스로 성취해낸 근성의 팀답게 그 본질의 가치를 입증하려듯 로파이(lo-fi)의 거칠지만 생생한 음질의 레코딩을 담아냈고, 도심의 일상에서 직접 겪은 작은 감성과 세밀한 모습들을 담아 아마츄어처럼 풋풋하지만 뜨거운 열정의 노래들을 선보인다. 곡에 따라 음색과 분위기가 다른 두 여성 멤버 김혜진과 정아리가 교대로 노래를 부르며 귀엽고 앙증맞으며 때론 담담하고 씩씩한 하루를 들려준다.

    첫 트랙을 여는 '또 지각'은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에 집을 나서는 기분을 기타와 피아노 반주에 휘바람으로 담아낸 연주곡이다. 중간 중간 매애애애~ 우는 효과가 만화 BGM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일탈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이 인트로가 끝나면 실질적인 첫 곡이자 유쾌 상쾌 통쾌함의 '마이티 러브송'이 시작된다. 통통 튀는 듯한 발랄함의 업템포 곡이지만 가사는 담백한 일상의 담담한 긍정을 담고 있다. 러브송으로 보기엔 대략 난감할 정도로 절제된 가사가 이질적인 뉘앙스를 간직한 듯 하다. 그 뒤를 잇는 '고속도로'는 브라이언 아담스의 언플러그드 실황에 실린 'Back to You'를 연상케 하는 곡으로 고속도로를 다니며 관찰한 모습들이 나열되며 나름 진지한 고찰을 남긴다. 건전한 호소 아닌 호소(?)로 급마무리되는 게 이 곡의 재미. 배고픔에 앙칼진 듯 귀여운 투정인 듯 앙징맞은 보컬을 들려주는 '밥'은 식성에 대한 노래로 처음엔 영어가사라 밥이란 외국인에 대한 곡인줄 착각했다. 경쾌한 로큰롤의 기운이 전반을 지배하며 절로 리듬을 타게 만든다. 담백한 건반과 베이스가 조화를 이루며 낭만적인 기타가 주단처럼 깔리는 '열대야'는 동요스러운 멜로디 라인과 풋풋한 기운이 어린 유머스런 가사가 어우러진 소품이다. 일상의 한 순간을 잘 포착해낸 꽁트랄까.
     
    누워서 천장 벽지 패턴을 바라보며 오묘한 상상을 진행하는 건 누구나 비슷한가 보다. '매일매일 누워'는 그 나른한 감성과 습관을 잘 담아낸 고백송이다. 살짝 잠긴 보컬의 목소리가 더욱 그런 기운을 부채질하며, 맑고 청량한 피아노가 오후 햇살처럼 산란돼 귓가에 살포시 앉는다. 미안해 엄마, 미안해 아빠 하고 나오는 가사가 요즘 청년 실태를 대변하는 듯해 가슴 아프다. 분위기를 바꿔 잔잔한 포크 사운드를 들려주는 '북향의 방'은 요즘처럼 갑자기 싸늘해진 날 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리는 노래. 기타와 보컬의 아련한 느낌이 싸늘해진 아침에 떠오른 태양의 온기만큼이나 따스하다. 앨범의 전반부가 이렇게 7곡으로 마무리되면 후반을 알리는 인터루드 '서울 463-26'가 시작된다. 뒤에 나올 본곡 '서울'에 대한 간략한 맛보기이자 극적인 느낌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로, 앨범 후반부에 대한 인트로 역할을 하고 있다. 앨범에서 가장 파워풀하고 강렬한 사운드를 선사하는 '서울'은 시원한 기타와 인상적인 후렴구를 가진 모던락으로, 홍보문구에 씌여진 '벨 앤 세바스찬'보다 오히려 한국 모던락 1세대였던 '더더' 사운드에 가깝다. 박혜경과 삐삐밴드 이윤정의 목소리를 섞어놓은 듯한 보컬도 그 기시감에 한몫하고, 이전곡들과 달리 심플하고 동요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세련되고 꽉 찬 편곡을 들려주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일상 속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담아낸 '신호등'은 소소하면서도 부담없는 마이티 코알라만의 전매특허 같은 소품. 조금은 가라앉은 듯 기운 빠진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시선 마주치기 어색해 바닥을 자주 보고 걷는 나로선 공감 100배의 노래다. 'When She got a Job'은 직장인의 비애와 공포(?)를 담아낸 가사와 귀에 쏙 들어와 박히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곡. 몽롱한 듯 우울함의 기타 루프도 좋다. 앨범 초반의 발랄함과 신명나는 기운을 다시 선사하는 '에이프릴'은 깜찍한 보컬과 로맨틱한 감성의 가사, 만화 주제가스런 멜로디가 어우러져 사랑스러움을 마구마구 던져주는 상큼 발랄한 복고 로큰롤이다. 지난 봄날의 화사한 청춘이 물씬 느껴지는 노래로 강추! 기타 선율에 음정과 박자를 무시하며 편안하게 부르는 'Mickey ant the Doggy'는 짧지만 풋풋한 재미와 귀여움이 느껴지는 진정한 소품이다. 그럴듯하게 개 짖는 소리와 휘바람이 어우러지며 일상의 편안한 한 단면을 포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따온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는 그 영화의 파격만큼이나 독특한 마이티 코알라만의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 하와이안 스타일의 이국적인 편곡과 이펙트 걸린 보컬, 의미심장한 가사가 만나 쉽게 잊혀지지 않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망의 마지막 곡 'Let's Go to Turkey'는 단순한 멜로디에 터키에 가서 미남, 미녀를 만나고 오겠다는 풋풋한 야망, 아니 다짐이 퍽 친근하게 다가오는 노래. 멜로디언을 첨가해 동요스러움을 극대화시킨다. 큰 임팩트를 남기지는 않지만 그들의 지장을 확실히 머리 속에 남겨주며 마무리 짓는다.
     
    밝고 건강한 아침을 위하여 '마이티 코알라'가 들려주는 음악들은 풋풋하고 상큼하다. 마치 앨범 전체에서 뿌잉뿌잉~ 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다만 밴드의 명확한 방향성과 앨범의 응집력 있는 통일성을 보여주지 못한 게 옥의 티. 어수선한 느낌이 살짝 아쉽지만 자신들만의 범상치 않은 아우라와 알록달록한 색채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미칠듯한 멜로디의 존재감 만큼은 인정해야 할듯 싶다. 지리하고 소소한 일상이 이들 노래와 같다면 분명 세상은 다르게 느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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