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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우석의 '글로브'
    영화|애니|TV 2011. 2. 6. 20:16

    벌써 19번째 영화다. 1989년 [달콤한 신부들]로 데뷔한 이래 지난 22년간 강우석은 대한민국 그 어떠한 감독들보다 열심히 꾸준히 찍어왔다.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과 [공공의 적]이 나오기까지 4년간의 공백기를 감안한다고 해도, 또 그러면서도 제작과 배급에 힘을 쏟아왔던 이력까지 샘한다 치면 어마어마한 생산력이고, 개근상감이다. 한 두 작품 망하면 밥숟갈 놓아야 하는 파리 목숨 신세인 감독 세계에서 그는 거의 불사의 길을 걸어왔던 셈이다. 그와 비슷한 시기 입봉한 감독들 중 그의 작품수에 대적할 만한, 그 위치에 맞먹을 만한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위로는 80년대 뉴웨이브 감독들과 아래로는 90년대 르네상스 시기의 감독들과 맞부딪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굳건히 쌓아왔다.
     
    쌍팔년도 감수성이라 혹평하고 안티가 속출해도 우리네 감정과 트렌드를 투박하지만 우직하게 캐치해내는 그의 놀라운 상업적 심미안만큼은 그저 대단할 따름. 필모 중 거의 대부분이 코미디 영화였지만 거의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으며, 드라마적인 색채가 강했던 [실미도]는 천만 신화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강우석에게 작가란 칭호를 붙여준 적 없고, 그의 작품들은 웰메이드 상업영화란 딱지 한 번 얻은 적 없다. 이에 자극이라도 받은 걸까. 2010년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행보를 펼쳐보였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한국사회를 축약해 치부를 드러낸 것만 같던 웹툰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스릴러 [이끼]를 내놓았으며, 그 뒤를 바로 이어 전혀 다른 성향의 휴머니즘 가득한 스포츠물 [글로브]에 도전한 것이다.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주축이 된 충주성심야구단의 실화를 다룬 [글로브]는 그러나 전혀 새롭지 않다. 아니 오히려 철저히 기존 스포츠물 장르에 기대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을 밟아나간다. 문제를 일으킨 그러나 실력만큼은 최고인 멘토, 실력은 쥐뿔도 없지만 의욕과 노력만큼은 세계 최강인 선수들, 그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 선수들의 불굴의 투지에 반해 결국은 마음을 돌려먹은 멘토가 선수들을 데리고 하는 지옥의 훈련. 그리고 운명적인 상대와 시합. 그 투혼에 주변인들의 마음은 달라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일보 전진하는 멘토와 선수들의 아름다운 모습! 야구가 아닌 농구와 축구, 아이스하키 등 다른 스포츠에 대입해도 이야기는 전혀 모자름없이 술술 풀려 나간다. 장애와 스포츠를 엮어 인상적인 드라마를 직조해낸 [말아톤] 만큼의 진심이 담기길 기대했으나 일장 훈계조의 연설과 신파로 풀어내는 통에 감정의 파고는 그리 크지 못하다.
     
    투박한 연출만큼이나 경기 장면도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십여 년이 훨씬 지났어도 세련된 긴장감을 자아내었던 [루키]의 야구 장면이나 유쾌한 감성이지만 감동을 주던 [메이저리그]나 [그들만의 리그]의 결말이 되던 경기와 비교해도 확실히 그렇다. 아니 우리나라의 [YMCA 야구단]이나 [슈퍼스타 감사용]에 견주어봐도 2% 아쉽다. 게다가 145분에 이르는 방만한 런닝타임에도 시합은 인트로를 제외하고 딸랑 군산상고와 두 경기가 다인지라 보는 이를 다소 맥빠지게 만든다. 정재영이 맡은 먹튀 야구선수 이야기보다 성심야구단의 시각으로 밀도감 있는 이야기로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유선과 뜬금없던 감정다툼이 생략되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을텐데. 강우석은 이 심플한 영화에서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 듯 하다. 뻔한 컨벤션과 클리셰가 반복되어도 스포츠라는 장르에서 갖는 감동의 근원은 언제나 그 뜨거운 진심이 아니었던가.


    비록 아쉬움은 남지만 그게 실망감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강우석에게 변화란 어울리지 않는 코스튬 플레이인지 모른다. 스릴러가 되었건, 감동 스포츠물이 되었건, 그는 언제나 장르에 상관없이 자신의 복장으로 돌아와 같은 스타일의, 같은 화법의 영화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 브랜드는 일정 이상의 완성도를 뽑아내었고, 고착화된 소비층을 갖고 있다. 아무도 작가라 불러주지 않아도, 웰메이드표 영화가 아니라 해도 강우석이 가장 확실한 대한민국 영화 장인이라는데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글로브]는 그 장인이 보증하는 최신작이다. 상투적이고 느리며 단선적이어도, 좋은 소재와 안정감 있는 배우들, 멋부리진 않지만 꾸준히 열심히 찍는 감독이 버티고 있는 보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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