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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중숙의 '시크릿 Hong Kong'
    책|만화|음악 2011. 2. 4. 23:58

    여행 다니는데 있어 여행가이드 서적만큼 계륵인 게 없다. 있으면 무겁고 귀찮고, 없으면 이리저리 헤매이기 쉽상이니 이건 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서적 자체도 개개인별 취향을 타기 마련인지라, 설명이 자세하면 감흥이 떨어진다고 투덜, 간단하게 표기되어 있으면 불친절하다고 투덜. 여행가이드 서적이 그냥 동네북이다. 게다가 좋은 여행, 즐거운 여행을 위해 가지고 떠난 서적이 여행을 지배하기 시작한 순간 끊임없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난 이미 너의 노예. 추천 코스는 모조리 출석 도장 찍어주겠어 마음 먹는 건 예사. 심지어 책에 나온 그 사진 그대로 담으려 용들을 쓴다. 인증샷 찍으러 여행 온 것도 아니고, 집에 돌아가 찬찬히 여행을 복기해보면 찍사 역활한 기억뿐이 없다. 그럴려고 비싼 돈, 없는 시간 쪼개 떠난 건 아닐텐데. 이게 다 그 놈의 여행가이드 서적을 잘못 만난 탓이다.


    천만에! 그간 가이드 서적을 잘못 활용했기 때문에 그런거라 생각해보진 않았는지? 여행의 주체는 당신이고, 나 자신이며, 우리다. 가이드 서적은 말 그대로 가이드일뿐, 책임지거나 보상해주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교훈을 떠올려보자. 전과를 맹신하지 말 것! 담임도 보고, 내 짝궁도 본다. 전국 600만의 어린이들이 두 종류의 전과 사이에서 숙제와 학업준비를 해갔다. 누구나 보는 가이드 서적이니까. 여행도 마찬가지다. 가이드북을 맹신하지 말 것. 참고만 하되, 주도권은 '내 손 안에 있소이다'라는 거. 스타일도 취향도 그리고 추억도 내가 만들어나가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서적과 만나는 건 꽤나 중요한 일이다. 시공사에서 나온 여행도서이자 홍콩통 신중숙 씨가 쓴 '시크릿 홍콩'은 정형화된 모범답안을 제시하기 보단 문제은행 스타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제안한다. 그걸 보고 선택하는 건 읽는 이의 자유이자 여행하는 자만의 특권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이렇게나 많이 꽉꽉 눌러 담아둔 재주가 놀라웁다.


    기능적으로 한 눈에 이해하기 쉽도록 단락과 이미지들로 표기된 건 물론, 맨 뒤의 지도를 활용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한 구성은 각 페이지마다 지저분하게 지도가 나열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체계적이다. 게다가 특징적인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축약해 특징만 잘 담아낸 코멘트들은 알짜배기며, 10개의 인트로(기념품 퍼레이드/시크릿 쇼핑백/길에서 찾은 홍콩의 맛/슈퍼마켓 쇼핑의 달인/드러그 스토어 쇼핑 팁/홍콩에서 살림 장만하기/무료로 즐기는 홍콩 여행/홍콩 쇼핑의 비법/미식가의 천국/홍콩의 걷고 싶은 거리)와 6개의 아웃트로(홍콩 입출국하기/공항에서 시내 이동하기/호콩 대중교통 이용 노하우/홍콩 여행 A to Z/추억 속 홍콩 영화/홍콩의 부티크 호텔)를 잡아 홍콩 여행의 팁을 소개하는 노하우들 또한 곧바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다. 중간 중간 지은이 외에 다른 이들이 소개해주는 간단한 비법들 역시 철저히 주관화될 수 있는 여행가이드의 맹점을 벗어나게 해주는 등 꼼꼼하고 영리한 지점을 밟아나가고 있다.


    빳빳하진 않지만 고급스런 광택지의 올 칼라 인쇄 상태도 매우 좋고, 여행에서 들고 다니기 편하도록 끝마무리를 라운드로 처리해 손에 베이거나 찔릴 리 없게 신경 쓴 디테일함도 맘에 든다. 게다가 여행자라고 광고하듯 요란스런 이미지의 여타의 여행 가이드 서적들과 달리 커버만 벗기면 노란색 단색으로 처리된 심플함도 쉽지만 아름다운 배려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잃어버릴 리 없게 눈에 띄는 색채의 존재감도 좋고, 뒤의 ㄱㄴㄷ 순의 인덱스도 첨부돼 활용도를 더욱 높였다. 홍콩이라는 도심지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쉬크하게 찍힌 사진들도 인상적이고, 저자가 특별히 추천한 Spot 또한 독특한 강점을 지닌다. 종이 때문에 책이 조금 무겁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추억의 무게, 여행의 무게에 비한다면 감히 조족지혈. 여행가방 없이 이 한 권만 들고 떠나는 여행도 그리 두려울 것 같지 않다. 신나게 먹고, 쇼핑하고, 구경하다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증발해버리지나 않을까.
     
    여행가이드 서적이 계륵이라는 편견을 버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묵직함 만큼이나 새끈한 정보들을 제공할 테니. 단, 맹신은 하지말고, 참고하되,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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