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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기의 '멋진 하루'
    영화|애니|TV 2008. 10. 1. 15:35

    후배들에게 딱지 맞았다. 친구들은 싫댄다. 가족들은 난리칠테고. 그래서 벼르다 혼자 보러 갔다. 덜 비참해지려고 꼭두새벽 조조루다. 다이라 아즈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마치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를 일본에서 만든 감성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핀이 나가있고, 루저들이며, 일상은 지독하니 리얼하기 그지 없다. 갑작스레 찾아와 돈을 갚으라는 사람이나 이를 돌려막기로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며 갚는 사람이나 괴팍하고 자기모순적이다. 사랑은 저리 꺼져, 신용은 거짓말의 또 다른 이름일뿐, 진실성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건조하고 삭막한 서울의 겨울 풍경 역시 옆에서 열심히 거든다. 그러나 어둡지 않다. 우울하지도 추레하지도 않다. 오히려 맥빠진 피식 웃음만 새어나올 뿐. 그런 게 삶이 아니겠나 싶어서.
     
    느릿느릿 긴 하루를 담아내는 이들의 여정은 서울이란 공간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나의 오늘은 어때했나. 어제는. 그리고 1년전에는. 무얼하며 누구랑 살아가고 있는지 한조각의 나이테로 현실을 복기해낸다. 전도연과 하정우라는 좋은 배우들의 생짜 연기와 관찰자 시점의 롱테이크와 리드미컬한 편집 센스가 돋보이는 이윤기 감독이 만나 정말 멋진 하루를 선사한다. 드라이하고 밋밋하지만 아무리 오래되어도 흐릿하게 느낄 수 있는 장롱 속 나프탈렌 냄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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