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폭우를 헤치며 부천을 향했다. 몇년만에 가보는 영화젠지. 열성적으로 예매하고, 하루에 5편씩 보고, 사우나에서 쪽잠 자고 이런 게 싫어 멀리했던 터라, 여전히 축제 마당같은 북적거리는 풍경들이 낯설고 설익다. 셔틀버스를 놓쳐 송내역에서 소풍까지 걷고, 비에 젖어 땀에 젖어 축축한 몸에, 또 발권하느라 헤매며 간신히 극장 안에 들어가니 몸과 마음이 500그램씩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본의 아니게 선택된 프로그램은
부천 초이스 단편 1. 6편의 각양각색의 단편들이 두 시간 동안 수를 놓는데, 즐거웠다. 각각의 코멘트.
33초. 여러 인물들이 엮이며 33초간의 생과 사에 얽힌 각자의 사연들이 펼쳐진다. [매그놀리아]나 [크래쉬] 등으로 익숙해진, 그래서 뻔하디 뻔한 느낌의 단편. 젤 기대했었는데.
본보야지:월드투어 2008. 세미 다큐멘터리로 시작해 뮤직비디오와 농촌 드라마를 버무린 이 기괴무쌍한 작품은 종잡을 수 없는 상상력과 키치적인 구성, 독특한 캐릭터로 보는 이의 머릿속을 마비시킨다. 아주 웃겼다. 염소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 만세!
무림일검의 사생활. 그저 무협과 사랑에 대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는 단순한 감독의 말과 달리 엄청난 패러디와 진지한 장난, 독특한 상상력과 썰렁하지만 꽤나 웃긴 유머를 구사하는 복잡미묘한 애니. 무려 [아라한 장풍대작전] 패러디가 있다!
리사. 폭력적인 가정에 사는 소녀, 그 일상에 도전해 변화를 이끌어내다. 이 섹션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맘에 들었던 작품. 거친 흑백 영상에 동화적이면서도 몽롱한 영상은 정말 [판의 미로]와 [까마귀 기르기]를 연상시킨다는 평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최고!!
위시. 소녀 둘이 잔뜩 치장을 하고 소년 둘을 부른다. 그리고 소원을 빌라고 하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짧고 강력한 작품. 아련한 뒷맛이 계속 남아 시선을 스크린에 붙들어맨다.
내 사랑 사라 제인. 좀비가 되어버린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반응. 익숙한 설정과 뻔한 내용을 가져와 소년, 소녀의 심리에 주력한 소품. 땟깔도 좋고, 웰메이드 하지만, 더 센 한방을 기대했던 나는 호러 매니아. 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