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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요르츠버그의 '폴링엔젤'책|만화|음악 2010. 8. 23. 23:31
학창시절, 머리 좀 굵어졌다고 선뜻 본 알란 파커의 [엔젤하트]는 당연히 그 시절에 봐선 안될 등급의 영화였다. 기분 나쁘도록 음산하고도 야했으며, 열대야처럼 끈쩍하면서도 찜찜한 구석에 쉽게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찬 몽타주가 종종 지나칠 정도로 내러티브를 간섭하는 알란 파커의 파격성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너무 많이 잘린 공윤의 가위질 덕분에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부두교와 흑마술의 짙은 그림자는 마음 한구석에 행운의 편지 받았을 때 마냥 찰싹 달라 붙고 말았으니, 꽤 오랫기간 노란색 눈동자의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요르츠버그의 소설은 파커의 영화보다 훨씬 더 쉽고 직접적이다. 하드보일드 펄프픽션에, 오컬트의 매력을 한껏 결합시킨 드라이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는 나락에 빠져드는 미물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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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 갓파의 '작업실 탐닉'책|만화|음악 2010. 8. 21. 23:13
웃기는 소리지만, 세노 갓파의 [작업실 탐닉]을 보고 있으면 '아 참으로 건전한 관음증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고 만다. 철저하게 관찰 당하는 사람이나 치밀하고도 꼼꼼하게 그려내는 사람이나 이런 작업을 유쾌하고도 즐겁게 즐길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에 놀라운 실천력을 지닌 장인들이 분명하다. 각 분야에 일가를 누린 사람들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영감을 얻어 그토록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누구나 궁금해 할텐데, 세노 갓파는 현실적으로 뜯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전지적인 시점의 부감샷을 동원해 그들 공간의 분위기와 모든 것을 디테일하게 한순간에 펼쳐 보인다. 정말이지 찬탄이 흘러나올 정도로 말이다. 짤막하지만 가감없는 정확한 코멘트와 역으로 소감을 적은 당사자들의 부끄러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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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의 '본 콜렉터'책|만화|음악 2010. 8. 13. 23:42
한달이 조금 안됐지만 기브스하고 누워있으면서 가장 몰입이 잘됐던 건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였다. 물론 [본 콜렉터]를 이미 영화로 먼저 봤다는 것도 무시 못하겠지만, 무엇보다 전신마비로 목과 왼쪽 손가락만 움직일수 있는 상황이 (물론 내가 조금 낫겠지만) 나름 비슷하다 여겨진 동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허나 침대에 누워 성질을 내면서도 번개 같은 머리를 팍팍 굴려대는 라임의 카리스마가 더위와 노트북 열기에 간신히 허덕거리며 비실댄믄 내 초라한 몰골에 너무나도 비견됐기에, 더군다나 내 곁엔 수족처럼 돌아다니던 안젤리나 졸리 같은 여순경도 없었기에, 비교는 곧 열폭과 자학으로 그치고 말았다. 안락의자 탐정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짜 침대 밖으로는 활동이 불가능한 법과학자를 등장시킨 제프리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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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구적초'책|만화|음악 2010. 7. 31. 04:44
능력은 굴레다. 운명이고 미래다. 능동적이면 정의되고, 피동적이면 해석된다. 모두 원하지만, 모두 다 가진 건 아니다. 쓰면 쓸수록 발전하고 엔트로피에 비춰 한계도 보인다. 그들은 계급이다. 훈장이고 결과다. 물론 그게 희생과 댓가의 다른 말이긴 하지만, 책임이란 이상한 논리로 합리화시키고 자부해 나간다. 그러길 꿈꾼다. 시기하고 동경하며 바란다. 허나 저주인 동시에 노예다. 능력자는. 미미 여사의 초능력에 대한 사랑은 남다른 듯. 짧은 단편 세개를 모아 그럴듯한 능력자들의 파일럿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중 장편화된 이야기도 있지만, 대체로 소품이고 미스테리의 변죽을 올리는 데 기능적인 역할만 해댄다. 그러나 이를 지닌 사람에 대한 본질을 꿰뚫는 시선과 비릿한 사회에 대한 후각 만큼은 여전히 생생하고 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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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책|만화|음악 2010. 7. 30. 18:42
폭염주의보까지 발표되는 한 여름, 에어컨도 없는 찜통 같은 방안에서 끈쩍거리는 침대 위에 누워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암만 [폴링다운]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거기선 마이클 더글라스가 폭발이라도 했지, 이건 주인공 세 명에게 교대로 닥치는 최악의 상황이 그저 끔찍하고 잔인하기만 하다. 그나마 완전히 비극적 결말로 치닫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을 뿐, 짜증 폭발에 불쾌지수 만땅 심어주는 이 가학적인(?) 성향의 소설은 상상 이상의 피곤함과 극심한 현실무력감을 선사했다. 현실이 다 그렇지 뭐. 그런 투덜거림과 함께. 그간 내가 알던 오쿠다 히데오 소설이 아니기에...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으엉?) 이 여름 진짜 최악으로 치닫고 싶다면 펼쳐라. 이열치열의 묘미를 선사할듯. 핫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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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의 '남겨진 자들'책|만화|음악 2010. 7. 29. 18:33
이 소설, 양파다. 까도 까도 끝나지 않을 음모와 배신에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제프리 디버는 최소한의 정보만 독자에게 던져준 채 사건을 진행시키며 관점을 뒤집는 마력을 선사한다. 초중반 서바이벌에 가까운 혹독한 모험기와 도망자의 스릴을 섞어 땀을 쥐게 하더니, 후반에 들어선 뒤통수 치는 반전을 앞세워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게 만든다. 거대한 음모가 튀어나올 것 같던 교차의 스케일도 갑작스레 대변모, 템포를 달리하는 막판의 급작스런 결말엔 가히 대략 난감, 다소 어이가 없을 정도. 알고보니 이 소설, 양파가 아니라 양배추다. 까도 까도 끝나지 않을 껍데기를 다 벗겨보니 안은 텅 빈... 그럼에도 바삭 바삭하니 씹어먹기엔 양도 많고 풍성한 질감의 미각을 선사하는 그런 소설. 제프리 디버는 깊고 굵은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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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넬리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책|만화|음악 2010. 7. 28. 23:46
존 그리샴 이후 오랜만에 도전한 법정 스릴러물. 제법 재밌다는 소문만큼 특색있는 인물들의 세팅이 가히 일품이다. 허나 내용이나 트릭보다도 차 안을 사무실 대용으로 쓰고, 돈 없는 의뢰인을 운전자로 쓰며, 전설적인 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 그리고 전처 둘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매력남 주인공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듯. 사실 법정물이라고는 했지만, 후반부에 조금 등장할 뿐 진정한 재미는 이쪽 업계의 실상을 밝히는 꼼수와 전략에 있다. 주된 사건으로 언급되는 사이코패스형 범죄도 조금은 밋밋한 편. 사실 마이크 코넬리의 깊고 깊고 닳은 맛은 언제나 인물이었다. 이스트우드 옹이 만든 [블러드 워크] 이후로 두 번째로 영화화되는 그의 원작인데, 재밌게도 주인공은 그리샴의 [타임 투 킬]에서 이미 변호사역을 맡은 바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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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기도의 '한시치 체포록'책|만화|음악 2010. 7. 15. 23:38
괴담이 좋은 계절이다. 적절히 모골이 송연한 기분은 끈적하고 더운 여름을 시원스레 보내준다. 너무 강도가 쎄 가뜩이나 열대야에 뒤적이는 밤, 귀신까지 합세하면 불면의 이중고에 시달리겠지만, 그래도 자꾸 눈 가리면서도 궁금해지는 게 이쪽의 매력일터. 그래서 분위기는 은근 잡지만, 유령보다 더 무서운 옛 에도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늘어놓는 [한시치 체포록]은 무더운 여름밤 하드바 하나 입에 물고 선풍기 돌려가며 어둑어둑한 독서등 켜고 읽기에 딱 좋다. 기이하고 수상스런 사건들이 펼쳐지지만, 얽히고 섥힌 싶타레를 진득하니 풀어 헤치는 한시치의 담백한 활약상이 숫제 일본판 셜록 홈즈 못지 않다. 잔혹하고 끔찍한 현재 일상사에 지치고 질력 났다면, 조금은 순수할 수도 있어 보이는 미신과 혼백에 고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