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셀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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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의 '이프'책|만화|음악 2007. 6. 10. 16:09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PC통신은 한국 최고로 장르 문학이 판을 치던 곳이었다. 신춘문예 같은 순수 문학 공모와 달리 PC통신에선 호러, 판타지, SF와 같은 한국에선 버림받던 잡다한 펄프 픽션들이 배출되었고, 숨어있던 내공 만땅의 아마츄어들이 사파(?) 문학의 고수로 새롭게 대접받은 것이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퇴마록]의 이우혁, [드래곤 라자]의 이영도, [고양이 여인숙]의 유상욱, [어느날 갑자기]의 유일한 등이 바로 대표적인 케이스. [흉가]와 [모녀귀(분신사바)]로 이름을 알린 이종호 역시 마찬가지다. 꾸준히 공포 소설만 써온 그는 PC통신에서 데뷔한 작가답게 빠른 이야기 전개와 독특한 아이디어, 글에 대한 몰입감이 뛰어나다. 최면과 자살을 소재로 한 이 작품 역시 그러한 특징들이 두드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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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야키의 '13 계단'책|만화|음악 2007. 6. 6. 01:23
난 사형에 대해 찬성한다. 사형이 구조적인 문제나 사회적 모순이 있다는 데엔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는 너무 나쁜 놈들이 많다. 용서라는 단어 앞에서 한없이 뻔뻔한 그들에게 자비와 휴머니즘은 사치일뿐이다. 갱생이란 논리적이고 희망적인 비전이지, 현실의 주관적이고 랜덤한 이기심 앞에선 말뿐인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형은 내게 사회에 있어 어쩔 수 없는 최후의 보루이자 필요악인 셈이다. 47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한 [13 계단]은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형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플롯 상에선 조나단 라티머의 [사형집행 6일전]이나 윌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을 떠올리게 하지만,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이 그러하듯 보다 사회 시스템과 구조적인 부조리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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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셀'책|만화|음악 2007. 6. 1. 18:35
스티븐 킹은 레이먼드 챈들러와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내 어린 시절을 풍미했던 3대 영미권 작가다. 물론 지금도 그건 여전히 유효하고, 이미 죽은 두 사람에 비해 여전히 쭈욱 활동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그로테스크하고 독창적인 상상력과 이를 안정되게 뒷받침해주는 탁월한 문장력을 소유해 이 업계(?) 쪽에선 이름 그대로 '킹'으로 인정해주는 공포의 제왕. 무엇보다 그는 사람 감정에 숨어있는 취약점들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공포심으로 치환할 수 있는 재주를 가졌다. 정신적 트라우마가 됐던, 유년기 시절의 아픔이었던, 기독교적인 원죄적인 담론이던 간에 그의 손을 거치면 환상적인 악몽 종합세트로 변해 아픔을 치유하거나 파멸시킨다. 그의 소설은 아름답고 잔인하며 무섭고도 감동적이다. 20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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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의 '팔란티어'책|만화|음악 2007. 2. 9. 16:41
작업하다 머리가 아파지면 주로 책을 읽는 편인데... (종종 그러다보면 좋은 문체들을 건질 수 있는 편이라서) 요새 붙잡은 책은 김민영 씨가 쓴 [팔란티어 : 게임중독살인사건]이다. 이 책의 원제가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이고, 이미 1999년에 쓰여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설정 자체가 뛰어난지 찬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물론 이미 그때부터 온라인 게임이나 기타 설정들의 단초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스토리에 잘 융합시켰다는 건 김민영 씨의 상상력이나 구성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겠지 싶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TRPG를 해 본 경험이 있고, 판타지 세계관에 익숙(?)한 편이어서 더 매료됐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문장력은 별로지만,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이우혁 씨에게도 이런 걸 바라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