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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쿠스틱 콜라보의 'Love Letter'
    책|만화|음악 2012. 4. 14. 18:27


    유난히 긴 겨울이었다. 매섭게 몰아치는 한파와 기록적인 폭설은 없었지만 지리하게 이어지는 겨울의 음울한 기운은 가뜩이나 추위에 약한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새분기가 시작된 4월달이 어언 반절 가까이 지났음에도 아직 싸늘한 바람과 차디찬 기온은 가실 줄 모른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옷가지들을 조합하느라 애쓰던 정신은 어느새 환절기 요정 감기에게 홀딱 빠져버리고, 그들이 던져준 기침과 콧물을 해결하기 위해 주구장창 약을 달고 사니 퍽이나 일상이 재미없게도 늘어져 버리고 말았다. 틀린 문제는 또 틀리고 마는 머리 나쁜 고학생처럼 매년 봄을 앞둔 요 시기에 되풀이하는 나만의 고생담이다. 딱히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증상을 완화시키는 차선책만큼은 확보해두었다. 바로 봄기운 가득한 노래들을 듣는 것.

    그런 면에서 '어쿠스틱 콜라보'는 꽤나 좋은 선택인 것 같다. 2010년 기타 치는 김승재와 노래 부르는 안다은이 의기투합해 결성된 이 러브리한 듀오는 꾸준히 미니 앨범들과 정규 1집을 발표하며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정립해가고 있다. 그룹 이름에 걸맞게 언플러그드 스타일의 편안하면서도 싱그럽고, 풋풋한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귀에 탁 들어오는 여성 보컬로 무장한 그들은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대중가요판에 순수하고 내츄럴한 감성을 무기로 승부한다. 사랑과 이별,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뜨거운 고백과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금방 휘발되어 버릴 것 같은 가벼움과 중독적인 후크송도 지양한 채 아날로그만의 매력을 듬뿍 함유한 무공해표 노래들로 지친 귀와 마음을 위로해준다. 지난 정규 앨범에서 가을 색채를 훌륭히 들려줬던 그들은 바야흐로 사랑하고픈 계절, 봄을 맞아 흐트러지는 벚꽃잎과 함께 두근거리는 연서를 들고나왔다. 이번에는 포크라는 영역에서 한발 더 나아가 스트링과 플롯을 대동해 보사노바에 클래식컬한 기운까지 첨가했다.


    Ep를 표방한 만큼 (연주곡 2곡을 포함) 5곡, 총 15분이 조금 안되는 짧은 런닝타임을 갖추고 있지만, 'Love Letter'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모든 곡들이 사랑의 기운을 그리고 있는 게 통일감 있는 구성을 보인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인트로 격의 '발걸음'은 마치 성큼 다가오는 봄기운이나 사랑의 신호를 캐치하고 달려오는 큐피트의 발걸음처럼 경쾌하고 흥겨운 연주곡이다. 업비트의 보사노바 리듬 위에 풍부하게 덧입혀지는 스트링과 밝고 명랑한 박은송의 플롯은 통통 튀는 기타와 어우러지며 로맨틱코메디에 어울릴 법한 기분 좋은 사운드를 선사한다. 그 느낌을 그대로 이어받는 '바람이 부네요'는 산들거리는 사랑의 마음을 자백(?)하는 은은한 러브송이다. 보사노바의 매력과 안다은의 은가루를 뿌린 듯 허스키하게 반짝이는 목소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사랑이 다가오는 순간의 설레임을 달달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 번째 트랙의 '고백'은 코러스와 기타 하나가 전면에 드러나는 따뜻한 감수성의 포크송으로 어쿠스틱 콜라보만의 색채를 유감없이 즐길 수 있는 곡이다. 이전 곡 '바람이 부네요'가 사랑의 시작을 알렸다면 이 곡 '고백'은 더욱 깊어지는 사랑의 열병을 수줍지만 열심히 호소하고 있다. 메인 보컬 뒤로 두텁게 깔리는 존재감 넘치는 소울맨의 코러스라인은 백만불짜리! 사랑에 대한 삼단 콤보를 찍는 마지막 보컬곡 '그대라서'는 잔잔하지만 영롱한 기타 리프에 안다은의 담백한 절제미가 융스트링의 풍부한 감성과 만나 빛을 발하는 포크 사운드로 봄날 햇살만큼이나 따스하고 감미롭다. 솔직한 감성을 담아낸 가사와 달리 직설적으로 감정을 전달하지 않고 지긋이 절제하는 김승재의 곡메이킹은 심심하지만 계속 떠오르게 만드는 묘한 감칠맛을 갖고 있다.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아웃트로 'Waltz For U'는 기타 한 대로 심플하게 들려주는, 그렇지만 짙은 여운이 묻어나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어쿠스틱 콜라보는 영리하다. 한계를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계절이나 기념일 특수를 기회로 받아들였으며, 트렌드를 스타일로 밀어붙였다.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지만, 꾸준하고 근면하게 작업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차트에서 선방하는 듣기 좋은 인디 밴드에 머무를지 아님 다른 변곡점을 맞이할지. 그들은 갈림길에 다다랐다. 새삼스레 어쿠스틱 콜라보의 다음 앨범이 기다려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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