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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빈의 '만나게 될거야'
    책|만화|음악 2012. 3. 26. 02:24

    좋은 책과의 만남은 좋은 여행의 느낌과 비슷하다. 책장을 넘겨 점점 활자에 빠져들며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마음은 낯선 여행지에 내려 그 골목의 향기, 생소한 말투의 언어, 이국적인 풍광에 젖어들며 발을 내딛는 기분과 많이 닮았다. 처음멘 어색하고 두렵고 집중도 안되는 산만함의 연속이지만, 점점 그 속에 적응해가며 녹아들수록 그 세계는 내 것이 되어간다. 그리고 내가 아는 세계는 그만큼 넓어진다. 게다가 그간 자기본위로 받아들이던 시각을 털어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비밀의 시공간과의 조우는 다양하고 독특한 충격과 감동을 안긴다. 책과 여행은 성찰이자 고해(告解)고, 이면의 기록인 동시에 활력소다. 이를 한번에 접할 수 있는 여행기나 견문록은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경험인 셈이다.
     
    사진작가 고빈이 펼쳐놓은 인도와 티베트의 포토 에세이 [만나게 될거야]도 그런 경직된 사고계에 조그마한 확장을 가져올 좋은 청정자극제다. 전통적인 여행기나 견문록과는 조금 다른, 소소한 에세이가 주를 이루지만 꾸밈없는 문장에서 오는 단아하고 겸손하며 사랑스런 기분들은 티없이 맑은 아이와 동물의 수많은 사진들과 어우러지며 가슴에 뜨뜻한 아랫목 같은 평화와 안식을 선사한다. 여행 중에 얽혔던 다양한 인연들과 소박한 사연은 애써 꾸미지 않아도 입가의 작은 미소와 메마른 정서에 촉촉한 비를 내린다. 내가 알지 못했던 공간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살냄새, 거죽냄새 나는 이야기들은 텁텁한 기운과 가난의 불안함을 던져주기는 켜녕, 왜 그렇게 서두르냐고,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묻는 듯 하다. 하긴 1인당 국민총생산이 2000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 부탄이 행복지수 1위 국가라고 하니, 조금은 삶에 대해 조금은 달리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화려한 수식과 기가 막힌 은유로 범벅된 요란스런 문장이 아님에도 심금을 아름다운 종소리처럼 울리는 글솜씨도 인상적이지만, 역시나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건 그의 본업인 사진들이다. 책의 반이 사진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큼지막히 실린 인도와 티베트의 고고한 풍광 속에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사진들은 별다른 구도나 찰라의 임팩트 없이도 성스럽고 감동적이다. 지긋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시선들이 천진난만하면서도 행복해보이는 게,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은은히 매료시키는 떠돌이 개, 고집 센 당나귀, 심드렁한 염소와 히죽 웃는 낙타, 새들과 그들을 데리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이 묻어나는 사진들은 내가 여태껏 알고 있던 세계에선 맛보지 못한 감동과 설레임, 따뜻함과 아련함을 선사한다. 이게 바로 여행의 묘미이자 책의 즐거움이다.

    책의 가장 마지막에 실린 티베트의 밤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대지에 있던 불빛들이 모두 밤하늘로 솟아오른 것처럼 그렇게 깨알같이 박혀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나 별이 많다니. 아니 애초에 존재했던 건 밤하늘의 불빛이 먼저였다. 문명화된 삶 속에서 오히려 그 본질을 잊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은 책의 멋진 작별 인사였다. 혹 책 제목처럼 '만나게 될거야'라고 건네는 반가운 인사인지도 모르고. 책장을 덮으니 좋은 여행을 끝내고 온 것 같은 기분 좋은 안도감이 온 몸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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