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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티브 도나휴의 '인생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책|만화|음악 2011. 9. 5. 05:28

    지금보다 조금 어린 천둥벌거숭이 시절, 난 자기계발서라는 걸 전혀 믿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잘 실천하면 될 걸 왜 저렇게 뻔한 십계명과 몇 살 때 해야 할 100가지 일들, 수많은 방법들에, 수도 없이 난무하는 7가지 습관들을 손꼽아 나열하는 서적들을 탐독할까 싶었다. 깨알 같은 빅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할머니 잔소리 같은 원론적인 교훈만 적힌 얄팍한 책들인데 뭐가 좋다고들 읽는 건지. 나원참. 그런 책들을 닥치는 대로 탐독했던 친구 왈, 책을 읽는 순간 의욕이 풍선처럼 팽창해 당장이라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날 것 같았다고 하는데, 책 덮고 3일 뒤에 만난 녀석이 평소와 다름 없는 걸 보고 자기계발은 쥐뿔, 읽어도 별 효용은 없구나 탄식하며 만화책과 소설에 더 박차를 가했던 것 같다. 실제로 그 책을 읽고 부자 아빠가 됐다거나 성공했단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고. 그건 잠깐의 자양강장제 같은 효과를 각성 효과만 줄뿐, 영구적인 체질 개선을 가져올 수 없다며 애써 부정하고 외면해왔다.
     
    그런데 그 놈의 나이가, 그 놈의 비교를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실상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언제나 계획대로 잘 실천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내 반듯한 인생은 예상과 다르게  남들과는 전혀 다른 산골짜기의 길을 개척해 걷고 있고, 제대로 사람 구실하며 가족들과 친구들 앞에서 본 조비의 It's my Life를 멋드러지게 부를 줄 알았던 희망찬 미래는 잔뜩 꼬깃해진 메모장처럼 구겨져 내 울분의 두 주먹 속에 감쳐줘 있으니 온갖 두려움과 후회가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게 아닌가. 버럭 박명수옹의 인생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진짜 늦은 거다! 라는 무한도전 명언이 딱 떠오르며 아찔하게 살아온 지난날의 인생 설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짱짱하게 세워둔 계획은 어느새 흐지부지 유야무야 흐릿해져 버렸고, 실천이란 단어는 내 사전에서 원래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편강탕 같고, 까페베네 같았으며, 김창숙 부티끄가 부럽지 않던 내 의지와 목표는 어디로 가버리고 귀차니스트에 룸펜만이 남아 쓸쓸하게 숨쉬기 운동을 하고 있는건가.

    그런 시련과 혼돈 속에서 별 기대없이 펼쳐든 스티브 도나휴의 [인생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은 자기계발서에 대한 내 편견과 고정관념을 조금이나마 뒤흔들어 주었다. 여전히 이런 종류의 책들은 뜬구름 잡는 충고들에, 자기 자랑 늘어놓기가 심하다고 의심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도나휴는 바다 거북의 여정과 자신의 경험담과 가족 이야기를 예로 들며 비교적 친절하고도 쉬운 비유와 설명으로 도덕적 훈장질의 부담감에서 벗어나 효과적인 조언을 해주고 있다. 직접적인 방법론의 제시라기 보단 우회적이고 부드러운 어투로 자기 안에 숨겨진 나침반을 찾아보라고 충고한다. 바다 거북이 그 오랜 항해와 생애를 보내고서도 알을 낳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건 내재된 본능의 나침반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들 자신도 내면 속에 숨겨진 나침반으로 인생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걸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알아서 찾아내는 것처럼 인생의 방향성도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중간 중간 체크한다면 어렵지 않게 길을 빌견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가 말하는 인생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1. 둥지 떠나기 2.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 3.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어 행하기 4.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기 5. 깊이 잠수하기 6. 집으로 돌아오기. 조금만 생각해보고 상상한다면 이 큰 화두에서 어떤 이야기와 조언들이 나올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그 역시 그런 일방적인 방법론 대신 자신 가족에 대한 사연과 바다 거북 생애에 대해 집중하며 소소한 에세이를 읽듯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결론을 도출해낸다. 아! 그제야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됐다. 이건 장기에서 훈수두기 같은 거였구나. 자신은 미처 바라보지 못한 묘수를 타인이 풀이해주고 긁어주는 기분! 당장 전면적인 인생 개혁을 이끌어내긴 어렵더라도 작은 동기와 긍정적인 마인드컨트롤을 부여하는 힘은 꽤나 컸다. 그래서  녀석이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자기계발서를 택했던 건가. 그간 이런 종류의 책들을 너무 결과론 위주로 바라본 내 자신의 부정적인 사고에 대해 반성해본다. 그땐 너무 어려 의욕과 패기가 끊임없이 충전될거라 믿었던 순진한 질풍노도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스티브 도나휴가 책 말미에 말했듯이 어떤 인생의 여행길을 보낼 지 결정하는 것, 그것은 (바로)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난 여전히 희망차게 본 조비의 "It's My Life'을 큰 소리를 부를 그 날을 꿈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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