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의 '불꽃처럼 나비처럼'

팩션과 무협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야설록의 원작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실재 역사와 판타지를 넘나들며 가공의 사랑 이야기를 스펙타클하게 펼쳐놓는다. 허나 경계를 넘나드는 것 자체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듯, 영화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후세가 다 아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표류하기만 한다. 설득력 없이 조선의 국모를 사랑한다며 졸졸 따라다니는 조승우는 만화책 어디선가 본 듯한 주인을 사모하는 닌자 스토커 같고, 흥선대원군과의 알력 다툼에 골치 꽤나 아팠을 명성황후 수애는 평면적이기 그지없는 개화기 시대의 모던걸 에피소드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얄팍한 원작의 깊이를 감안하더라도 취사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엉성한 각색과 캐릭터들의 현실감을 잡아내지 못한 연출력의 부재가 가장 아쉽게 다가온다. 차라리 정준호와 이미연, 허준호가 나온 10분짜리 '명성황후' 뮤직비디오를 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