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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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발.잡담 2010. 7. 14. 23:13
떠드는 게 지겨워졌다. 수다쟁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였나 보다. 그간 너무 말을 많이 했던가? 아니 그건 아닐거다. 오랜만에 노래방 가서 마이크를 잡으니 목이 잠겨 소리가 안나오더라. 노래를 못 부르니 금세 지겨웠다. 그런게지. 아마 너무 입 다물고 있어 지겨워졌나 보다. 조용하니 세상이 참 재미 없더라. 조근조근 속삭이던 시선도, 맞받아주던 대꾸도 한여름 뜨거운 태양에 녹아 사라지고 피곤한 침묵만이 남아 나른하니 하루를 감싼다. 그런 하루를 덧없이 보내니 왠지 혼잣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지겹지 않도록. 이것마저 잃어버리면 이 여름 속 흔적없이 증발되어 버릴 것 같다. 그럼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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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안 펀치 트렁크.잡담 2009. 8. 30. 23:59
여름이 끝나가는 무렵 알록달록 꽃무늬 반바지를 샀다. 비록 올해는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어여쁜 아가씨들의 뭇 시선을 끌며 차거운 도시 남자의 마력을 내뿜을 기회조차 없었지만, 언젠간 그럴 수 있겠지 아쉬움을 고이 접어 나빌레라 싶었다. 이국적인 따뜻한 남쪽 섬나라 모래사장에서 서핑하는 금발 미녀들을 바라보며 인생을 논하는 그런 나날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옥상 위 푸른 하늘 아래서 떠올렸다. 현실은 시궁창 같은 방구석. 하아. 기분이라도 내주는 내 빨간 하와이안 펀치 트렁크가 그저 고마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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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안에서.잡담 2009. 8. 9. 14:07
1년만에 하는 방청소. 쓰레기통이 되어가기 직전의 상황이여서 아무래도 주인의 사명으로 구제해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모든 문을 열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으며, 굵은 땀방울을 흘려대며 하나 둘 정리를 시작했는데, 이건 뭐 끝이 안보인다. 반나절이 지난 지금 이 뜨거운 날씨 속에서 늙은 개가 맞이한 복날의 기운처럼 헉헉거리고 있는데, 청소는 이미 안드로메다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한없이 푸른 바다만이 머리 속에 아른거린다.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있어. 그리고 내 곁에는 니가 있어. 환한 미소에 함께 서 있는 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체리 코크를 마시며, 옥상의 열기를 만끽하며, 난 여름 안에서 이렇게 갇혀있다. 날씨 좋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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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전기파리채.잡담 2008. 7. 27. 23:28
쉴 새 없이 모기가 음속(?)의 속도로 날아다녀 나를 괴롭히는 바, 그 속도를 쫓아 공중전에 투입되긴 너무 힘없고 느린 거대 괴수류의 몸집을 가졌기에, 이번에 새롭게 비장의 무기(?)를 집에 들였다. 세일해서 거금 1500원 주고 인터넷에서 구매, 2500원의 배송료가 더 비쌌던 이 녀석은 이른바 재래시장 및 상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중국제 전기 파리채! (두둥!) 무려 3만 볼트의 위력...에서 2만 9997 볼트를 뺀 AA 건전지 두 개의 파워지만, 순간 정전기는 5000 볼트에 달한다는 사실. 침대에 누워 비실대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한번 휘둘러주는데, 순간 퐉!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불꽃이 튀겨 X침 정통으로 당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오징어 타는 냄새가 진하게 방안 가득 채우며, 채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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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 Day Afternoon.잡담 2008. 7. 8. 19:10
날이 미쳤나. 아직 음력 6월인데, 이 찜통 속의 만두가 느낄법한 기온은 뭐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온 몸의 육수 1.24 온스가 주르륵 흐를만큼 덥다. 옷은 이미 건조가 들 된 옷마냥 축축하고, 끈쩍거리는 피부는 왠만한 양면 테이프 저리가라 할 정도의 접착력을 자랑하며, 불쾌지수는 이미 내 아이큐 지수를 넘어선지 오래. 정말 개같은 날의 오후. 은행이나 관공서를 일부로라도 찾아가고 싶은 날씨다. 이런 날 이열치열이라는 미명 하에 선풍기마저 미지끈한 바람을 내뿜는 옥탑방에 올라, 엄청나게 매운 짬뽕국물을 들이키며,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소울 뮤직을 크게 틀어놓으면... 돌아버리겠지. 지금 그러고 오후를 보내고 있는 나는야 싸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