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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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주변인'책|만화|음악 2013. 6. 19. 22:08
1집만이 주는 묘한 설레임이 있다. 그전엔 전혀 듣지 못한 새로움이 주는 쾌감이다. 방향성과 색깔을 발견해가는 재미다. 그의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동질화 돼가는 교감의 시간이다. 디지털 싱글이나 앤솔로지 앨범에서 만났던 파편에서 벗어나 온전함과 마주한 기쁨이다. 갓 나온 CD와 속지 잉크의 따뜻한 내음이다. 패기와 열정 그리고 두려움과 떨림을 뒤로 한 채 나선 신인의 자존감이다. 1집 정규 앨범엔 그 모든 게 얽혀 기묘한 흥분을 안겨준다. 낯선 커버 이미지부터. 내지를 쓰윽 눈으로 훑어보며. 뻑뻑한 CD를 꺼내 음악의 무게를 가늠하고. 첫 음이 이어폰에서 새어나올 때까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기대감과 불신이 교차한다. 때론 찌푸리고 난해함에 몸을 떨어도, 기시감과 익숙함의 간극에서 벗어난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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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선의 '화해'책|만화|음악 2012. 2. 2. 04:32
수정선. 그의 1집 앨범을 들었다. 한국에도 '수'씨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나 하는 마음에 웹 검색을 해보니 정말 존재하고 있었다. 남쪽에만 120명 가량. 와! 그 가운데 한 사람과 만나는 건가. 놀라운 마음으로 그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살펴보니 진짜 이름이 아니란다. 애써 검색한 내 노력이 검연쩍게시리도. 그러나 그 숨은 의미는 아주 예뻤다. 수정(水晶)으로 만들어진 배(船)란 뜻의 수정선. 바로 신재진의 원맨 밴드였다. 아름다운 이름만큼이나 서정적이고 찬란한 음악으로 무장한 그는 많은 인기와 관심을 갖진 못했지만 가능성을 알린 인디락밴드 '잔향'의 멤버 출신이었다. 라디오헤드와 콜드플레이를 적절히 믹스시켜 놓은 것 같은 침전되고 몽환적이며 다크한 기운을 뽑아내던 그들은 비록 데뷔 EP와 정규 1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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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네 담벼락의 '한 개의 달 한 개의 마음'책|만화|음악 2011. 12. 4. 15:31
반짝이는 멜로디는 없다. 톡쏘는 향기처럼 중독될 후크도 없고, 심지어 그루브한 리듬감이 몸을 자극시키지도 지배하지도 않는다. '순이네 담벼락'은 이름만큼이나 촌스럽고 투박한 감성을 지녔고, 당혹스러울만치 자기네들의 비정형화된 사운드를 고집한다. 강렬한 기타 연주 속에서 피어나는 피아노의 영롱하면서도 노스탤지어를 간직한 따뜻한 음색은 대중적인 기대를 저버린 채 어둡고 힘든 일상으로 훌쩍 떠나버린다. 거기에 여리여리한 리드 보컬의 가녀린 목소리는 언제 꺼져버릴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게 들려온다. 폭풍을 목전에 둔 길가의 민들레처럼 세차게 흔들리며 불안하게 귓가로 흐트러져간다. 파워풀한 스토로크와 열정적인 터치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감에도 남는 건 짠한 공허함과 울적한 허무함이다. 평범하지만 공감 가는 가사말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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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개들의 '그래, 아무 것도 하지 말자'책|만화|음악 2011. 10. 26. 17:12
얄개들. 조흔파 선생의 소설이 유행하던 1970년대도 아니고 이런 촌스런 이름을 굳이 꺼내든 이 신인 밴드의 저의는 과연 뭘까. 앨범을 처음 받아들고 들었던 생각은 이 밴드 진정성에 대한 일말의 의심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편견이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이후 인디씬에 유행처럼 퍼진 복고풍 빈티지 사운드에 무임승차한 시대조류의 편승인가. 아님 추억 환기용으로 소비되어지길 바라고 상업적으로 접근한 영리한 계산일까. [세시봉 특집]과 [나는 가수다] 열풍으로 한껏 탄력 받은 과거 히트송에 대한 수요와 트렌드적인 환기는 그 시대를 거쳐온 세대로서 반갑고 즐겁긴 하지만, 지나친 우려먹기와 본질은 외면한 채 과도한 스타일에 대한 집착으로만 해석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던 것도 사실이기에 유독 색안경을 끼고 민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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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티 코알라의 '밝고 건강한 아침을 위하여'책|만화|음악 2011. 10. 19. 07:01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 무성의하게 대응하는 자신을 보며 반성한 적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의 오늘이 남들에겐 주어지지 않는 내일일지 모른다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충실하게 행동하라는 격언은 귓등으로 흐르기 일쑤. 귀차니스트인 내가 하루에 대해 조금의 경의라도 보인 건 일기를 쓴다거나 블로그 포스팅하는 게 고작이었다. 사진을 찍고, 단상을 끄적이다 보면 그날의 흔적을 조금이나 건지지 않겠나 하는 안일함이 딴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러다보니 결국 일기도 매너리즘에 빠져 그날 그날이 날씨를 제외하고 이하동문의 연속이고, 블로그의 포스팅 수는 점점 줄게 되었다. 이럴 때 음악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같은 나날이라도 다른 장르, 독특한 감성으로 하루를 불러 볼텐데. 어째 글이라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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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Monsters의 'RIOT!'책|만화|음악 2011. 7. 26. 05:14
델리스파이스와 오메가3의 드러머 최재혁과 마이 엔트 메리의 베이시스트 한진영 그리고 검엑스의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이용원이 뭉쳤다. 각각 걸출한 지명도를 자랑하는 한국 모던락 밴드의 멤버인 이들이 결성한 3인조 슈퍼밴드 옐로우 몬스터즈는 그러나 모체 밴드와는 전혀 다른 색채의, 하이 볼티지가 충만한 거칠고도 헤비한 사운드를 사방팔방 뿜어냈다. 얌전한 모던락의 흔적을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도 없을 만큼 파워풀한 펑크와 하드락의 경계를 오갔다. 그간 이같은 열정과 혼을 어떻게 숨기고 살았나 싶으리만큼 강력하고 단단한 사운드였기에 단 한 번의 파격적인 실험이자 일탈적인 외도로만 생각했는데, 정확히 1년뒤 그들은 본업보다 더 부지런하게 두 번째 작업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타났다. 무려 1집보다 5곡이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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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Plan의 'Get Your Heart On!'책|만화|음악 2011. 7. 5. 03:49
심플 플랜과의 운명적인 첫 조우는 그들의 가장 대중적인 히트작 'Welcome to my life'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시원스레 쭉쭉 뻗는 보이스 컬러, 통통 튀는 드럼비트, 발전기를 가져다 놓은 양 찌릿찌릿한 기타 사운드가 일품인 이 미디엄 템포의 모던락은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제목만 듣고는 내 인생에 너를 초대해 앞으로 평생 같이 살고 싶다 류의 러브 스토리인줄 착각했는데, 시니컬하고 드라이하면서도 나름 긍정적이던 가사에 또 한 번 놀랐던 기억이 선하다. 'Take my Hand'와 'Perfect'를 들으며 하드한 맛과 소프트한 맛을 동시에 낼 수 있는 실력과 스타일에 놀랐고, 'I'd do anything'과 'Shut Up'을 통해 그들의 경쾌함과 베이스 돌리기 만큼이나 자동으로 벗헤드 인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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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혁의 'Human Life'책|만화|음악 2011. 4. 2. 22:13
도심을 걷다보면 언제나 마주치는 회색빛 콘크리트 마감에 묘한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복작거리는 차들과 차거운 네온등빛, 시끄러운 소음과 진동, 무관심, 그리고 정체불명의 오지랖과 빠르게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도하는 나는 천상 도시 촌놈이다. 관심과 간섭을 피해 자신의 세계에 침전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감정을 휘발시키고 점점 더 시니컬하고 비관적인 시선을 갖게 되는 내 도시의 삶은 생존전략과 상처를 견딜 수 있게 하는 방패를 넘어 특유의 낭만을 선사한다. 각박하고 매마른 유리 동물원 속 거대 유기체처럼 돌아가는 미친 시스템. 크던 작던 액정으로만 나누는 대화. 우울한 자조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무기. 그리고 건조하고 단단해지는 만큼 강해지는 거라는 믿음까지. 줄곳 눈물과 감정을 지워버린 채 지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