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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령의 'I'm fine'
    책|만화|음악 2012. 4. 29. 17:50


    김보령의 데뷔 싱글 'I'm fine'을 듣고 있으니 문득 오쿠 하나코가 떠올랐다. 물론 이 둘은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졌다. 키보드 하나에 청아한 목소리를 꾹꾹 눌러담아 진성으로 낭창낭창하게 부르는 하나코와 달리, 김보령의 목소리는 중저음역대에 나긋나긋하지만 조금은 허스키한 탁성의 가성을 오가는 편이다. 그럼에도 순간적으로 둘을 공통적으로 묶게 만들었던 건 두 가수 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단촐한 편성임에도 세련된 곡메이킹에, 진솔한 감정을 담백하니 담아 노래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점 때문이었다. 하나코처럼 직접 키보드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히키가타리ひきがたり까지는 아니지만, 홍대 인디 밴드와 코러스, OST에 참여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온 김보령은 신인답지 않은 여유와 색깔을 가졌다.

    15분 4트랙이 말해주듯 이 데뷔 싱글에서 김보령의 모든 면을 발견하기란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잔잔한 후회와 자조어린 독백들을 묶어 하나의 통일감과 전체적인 이미지를 자아낸 작편곡 능력과 프로듀싱 실력만큼은 단연 눈에 띈다. 그것이 비록 심심할 수도 있는 다소 희미한 인상이긴 하지만, 요즘의 세디센 자기 주장과 광고 카피로 점철된 가사 그리고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멜로디에 질린 이들이라면 이런 소심하고 잔뜩 움츠러든 방어막 같은 감수성도 그리 나쁘지 않을 법하다. 극적인 요소로 치장한 한국형 발라드나 푸근한 감수성의 전형적인 포크 장르에서 살짝 빗겨난 그녀의 미니멀하고 담백한 사운드는 땅이 꺼져라 우울하고 회의적인 시선들로 가득한 가사임에도 이를 자체적으로 중화시킨다. 그래서 청자의 감정이입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서 더 쉬크하고 차분한 매력이 느껴진다.


    유려한 피아노 연주와 있는 듯 없는 듯 심플하게 받쳐주는 프로그래밍, 가녀린 듯 하지만 살짝 떨림이 묻어나는 가성 속 강단 어린 보이스가 잘 섞인 첫 곡 'I'm fine'은 그러한 반증으로 어디서고 못 느껴본 신선한 질감과 분위기를 선사한다. 후반부 오버더빙된 코러스가 중첩돼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느낌과 '내가 날 제일 힘들게 해'라는 의미심장한 가사가 'I'm fine'이란 제목과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반어적인 재미 또한 인상적이다. 두 번째 트랙에 자리잡고 있는 '참아지지 않는'은 그녀의 중저음 보이스와 까끌하고 스산한 감촉의 가성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잔잔하고도 허무한 감성의 슬픔이 묻어나는 노래다. 앨범에선 박혜리가 모든 피아노 세션을 맡고 있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공연 영상에선 직접 피아노로 연주하며 노래하는 그녀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상큼발랄통쾌하게 느껴지는 피아노 소리, '반짝반짝'이란 희망적인 느낌의 제목,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듯 자유자재로 가성을 오가는 목소리의 세 번째 트랙은 첫 번째 곡이었던 'I'm fine'과 닮았다. 밝게 느껴지는 곡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체념적이고 시니컬한 가사를 가졌다는 것마저도 비슷하다. 끝자락에 흘러나오는 '사는 게 다 그렇지 안 그래?'하고 묻는 코러스에선 체념의 기운보단 무념의 경지마저 감지된다. 마지막 네 번째 트랙으로 흘러나오는 '그 자리'는 슬픔을 물 먹은 스폰지처럼 고스란히 머금은, 속으로 절절한 송가다. 감정을 삭히듯 속삭이는 그녀의 표현력도 좋고, 박진영이 모 오디션에서 그렇게 주구장창 부르짖던 공기 반, 목소리 반의 호소력 넘치는 보이스 컬러도 매력적이다. 단조롭게 들린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받쳐주는 피아노와 중간에 감정을 고조시켜주는 소임을 다한 기타 전주도 사색적이고 단아하게 다가온다.


    강력한 한방과 놀라운 센스로 무장한 채 청자를 넉다운시키는 인상적인 데뷔는 아니지만, 아직은 들려준 것보다 들려줄 것이 많은 신인의 모습이 느껴지기에 다음 노래가, 새로운 앨범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상처를 속으로 삭히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감성적인 사운드가 봄날 꽃잎처럼 흐트러진다. 상업적인 감각과 트렌드에 쉽게 흔들릴 수도 있는 요즘이지만, 자신의 색채를 포기하지 않고 들려주는 당찬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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