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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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의 종언.잡담 2008. 9. 2. 23:26
방 정리하다 나온 수십 개의 카세트 테이프를 바라보며 회한에 잠겼다. 저것들 산다고 돌아다니고, 녹음한다고 기를 쓴 게 몇 년인데 벌써 이런 쓰레기 대우를 받다니. CD다 MD다 MP3다 새로운 매체에 치여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 게 몇년 전인지 이제 기억조차 가물가물거려 떠오르지도 않는다. 수북히 쌓인 먼지만이 그 세월의 간극을 말없이 대변해주고만 있을뿐. 하나하나 뒤적거리니 예전 기억들이 떠올라 새삼스레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다. DJ의 소개 멘트와 노래를 정성껏 녹음하느라 카세트 버튼 누르는 신공을 발휘하던 그때가, 길보드 차트라 부르던 편집 테이프 사다 렌트카에 틀어놓고 여행가던 그때가, 서로 얇디 얇은 워크맨의 두께를 자랑하던 그때가 떠올라서. 버리려고 치워뒀다 다시 방 구석에 모셔뒀다. 부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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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도서실의 바다'책|만화|음악 2008. 4. 15. 23:40
온다 리쿠는 추억 속에서 떠돈다. 그것이 아름답건 추악하건 슬프건 기쁘건 그녀의 글 속엔 언제나 기억이라는 화두가 아스라히 손대면 부셔질 듯한 이미지와 결합해 사람들이 걸어 온 생의 흔적을 비춘다. 잊어버리고 지워버리며 각색된 기억을 통해 현재를 무덤덤하니 살아가는 현대인을,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조작된 삶을 냉랭하고 무의식적으로 평가내리는 현대인의 습관을 고스란히 글에 담아 포장하는 그녀의 솜씨는 여전히 탁월하고 꼼꼼하다. 장편처럼 강렬하고 화려한 맛은 없지만 언제나 조용한 듯 새침한 듯 불안한 정갈함을 보여주는 단편들이 담겨있다. 긴 호흡의 키스보다 짧은 찰라의 뽀뽀가 더 인상적일 수 있듯, 그녀의 단편은 기습적이고도 찰라적인 순간의 인생의 여러 모습들을 캐치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