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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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신년 정초의 기분.잡담 2013. 1. 8. 23:36
새해가 시작되고 매서운 추위가 잠잠해지지 않은 지난 며칠간 뒷골이 묘하게 묵직하고 땡겼다. 흔히들 숨골이라 부르는 그 부위가 뒤로 젖힐 때마다 뻑적지근한 게 아 이거 보통일이 아니구나 싶은 공포감이 새해 복 많이 받기도 급급한 와중에 슬금슬금 도래한 것이다. 가뜩이나 고지혈 증세를 보이는 끈적끈적한 피의 소유자인지라 더럭 겁이 나 인터넷을 뒤적거려 보니 풍이라 불리우는 뇌졸중 전조증상에도 이런 징후가 딱!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설마 이 나이에 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훅 쓰러져 골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 어디 나가지도 않고 자고 싶은 대로 퍼질러 잤더니 수면이 늘어나는 것 역시 뇌졸중 전조 증상에 딱! 하니 있었다. 그럼 어쩌지. 그럼에도 병원 MRI는 조금 많이 부담스러워 일단 베개부터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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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600분의 귀한 시간들.잡담 2010. 9. 5. 03:02
525,600분의 시간 중에 얼마나 많은 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걸까. 무의식적으로 여는 인터넷 창으로, 멍하니 틀어놓고 바라보는 TV CF로, 전자렌지에 음식 돌리는 그 짧은 텀으로, 컴퓨터 부팅하며 뜨는 멋대가리없는 MS 윈도우 로고 감상으로, 지하철이 오길 바라는 플랫폼에서, 또 버스 정류장에서 그리고 '날 화나게 만들지 마!!' 중얼거리며 이 끓어오르는 화를 폭발할까 참을까 어찌할까 순간적으로 망설이는 그 순간까지도, 525,600분의 귀한 시간들은 끊임없이 내게서 허공으로 사라져가고 만다. 생에 단 한번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지만, 낙천적이고도 끊임없이 꿈을 꾸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조나단 라슨은 과연 그 시간들을 후회했을까. 얼마남지 않은 시한부임에도 멕시코로 암치료하러 간 장진영은?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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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영화|애니|TV 2009. 11. 27. 23:12
떠나는 자는 말이 없다. 남겨진 자는 의문을 갖는다. 그들이 던지고 간 일상의 수수께끼를 과연 풀 수 있을까. 아니. 영영 해답은 없다. 살아가는 내내 그 화두는 잊혀졌다 떠올랐다를 반복하며 남은 자들을 괴롭히지만, 결코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추측과 예상만이 그려질 뿐, 막상 내게 아름다운 한줄기 빛이 내려와 저 바다로, 철길로 끌어당긴다 해도 떠나는 그 순간에도 답을 알 순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일상의 세밀한 묘사로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부재의 고통'을 담아내는 조용한 강렬함은 [환상의 빛]이 가진 힘이다. 부차한 설명과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아도 우리 곁에 만연한 죽음의 일상은 언제나 납득하기 어렵다. 부재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함은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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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산들.잡담 2009. 5. 29. 03:20
그렇게 사라져 가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게 어딘가 남아 있을거야.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피할 수 없어.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멈출 수 없는 그런 나의 길. 다가올 시간 속의 너는 나를 잊은 채로 살겠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게 조금은 남아 있을거야. 새로운 세상으로 가면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맘처럼 쉽진 않겠지만 꼭 한번 떠나보고 싶어.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많은 세월 살아왔지만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서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두렵지 않아. 구름 위를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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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잡담 2009. 5. 23. 18:04
옆집 아이가 운다. 뒷집 아이도 운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귀청이 떨어져라 얼굴이 새빨게지도록 운다. 잠이 부족해 투덜거리며 몸을 뒤척이던 내게 이 소식이 전해진 건 이때쯤, 아이들의 울음소리 속에서였다. 꿈을 꾸는 줄 알았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거짓말....' 40시간 가까이 못자다 겨우 잠든 내게 전해진 비보에 한참동안을 멍청하게 TV만 바라봤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데 왜 이리 어색한 걸까. 아직도 덜 깨인 몽롱함 속에 해맑은 그의 웃음을 보며 고인의 넋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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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프로야스의 '노잉'영화|애니|TV 2009. 4. 20. 21:21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로 다가올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기저의 밑도 끝도 없는 미지의 공포감이 무의식적인 자기방어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우울증과 무기력함, 두려움이 유발되는 거라고. 알 수 없는 혹은 너무나도 잘 아는 인간의 엔딩에 대한 막을 수 없는 무기력함에서 불안이 삶을 잠식하는 거라고 말했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노잉'에서 오는 공포의 기시감은 바로 그것이다. 파국와 결말을 알기 때문에 오는 너무나도 탈종교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임사 체험과도 같은 공포감. 두려움 그리고 또 다른 희망. 그의 앞선 영화들(크로우와 다크시티, 아이로봇)과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종교적인 색채는 여기서 더욱 두드러져 더 강한 의미와 반감을 선사하며 다크한 충격파를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