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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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책|만화|음악 2010. 1. 21. 02:19
나날이 잔혹해지는 사회 범죄 앞에 무력한 일반 시민을 더욱 열받게 만드는 건 모순된 제도 탓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일면만 바라보는 시선 또한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게 만드는데,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벙어리 냉가슴이란 답답한 감성까지 잘 파고든 미스터리가 바로 [천사의 나이프]다. 점점 어려지면서 영악스럽기 짝이 없는 소년범죄를 파고든 이 소설은 사회파 계열처럼 강렬한 이슈와 화두를 던지면서도 반전이란 깜짝쇼를 통해 퍼즐 미스터리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한 솜씨다. 죄값과 갱생이라는 상반된 입장 아래에 놓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헤아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청기 내려 백기 올려 식으로 어느 한 쪽의 손을 막연히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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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카 슈케이 外의 '적색의 수수께끼'책|만화|음악 2008. 11. 20. 23:13
어떤 의도로 색깔별로 나눴는진 모르겠지만, 에도가와 란포상 5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단편집 4권 중 하나. 모두 5개의 (중편에 가까운) 단편이 실려있다. 작가들 면면 또한 화려한데, 신포 유이치나 다카노 가즈아키의 경우 그 기대치에 걸맞게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현재를 교묘하게 엮는 산악 (미스테리라고 보긴 좀 그렇고) 심리드라마 '구로베의 큰 곰'과 짧지만 공포 스릴러 영화 만큼이나 강렬한 뒷맛을 선사하는 '두 개의 총구'는 이 단편집의 백미. 정통 밀실을 다룬 '밀실을 만들어 드립니다'와 딸의 찾는 이야기인 '라이프 서포트', 흥미를 자아내는 시작이 정말 좋았던 '가로'는 다소 2% 아쉬운 듯. 남은 청색과 백색, 흑색의 수수께끼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격하게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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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야키의 '13 계단'책|만화|음악 2007. 6. 6. 01:23
난 사형에 대해 찬성한다. 사형이 구조적인 문제나 사회적 모순이 있다는 데엔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는 너무 나쁜 놈들이 많다. 용서라는 단어 앞에서 한없이 뻔뻔한 그들에게 자비와 휴머니즘은 사치일뿐이다. 갱생이란 논리적이고 희망적인 비전이지, 현실의 주관적이고 랜덤한 이기심 앞에선 말뿐인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형은 내게 사회에 있어 어쩔 수 없는 최후의 보루이자 필요악인 셈이다. 47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한 [13 계단]은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형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플롯 상에선 조나단 라티머의 [사형집행 6일전]이나 윌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을 떠올리게 하지만,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이 그러하듯 보다 사회 시스템과 구조적인 부조리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