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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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책|만화|음악 2010. 2. 7. 23:08
조선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방각본이란 독특한 사료(史料)에 연쇄살인을 접목시킨 [방각본 살인사건]은 한국형 팩션에 좋은 본보기를 던져주었다. 소설 속의 소설史를 구현해보이겠다는 야망과 현 정치 상황을 투영시킨듯한 당쟁다툼 속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쫓는 김탁환의 욕심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결과론을 떠나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그 후속편이자 백탑파 시리즈의 중간다리인 [열녀문의 비밀]은 전작과 동일한 길을 걷되, 한발짝 더 나아간다. 이번에는 조선 속 여류소설을 파헤치는 동시에 사회 상황이 갖고 있는 한계이자 문제점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방각본 살인사건]이 시작이자 소개고, 그 희망찬 남인들의 소망을 담아냈다면, [열녀문의 비밀]에선 보다 현실적인 상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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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의 '쌍화점'영화|애니|TV 2009. 1. 19. 23:37
도식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많이 반복되어 왔고, 그만큼 인기를 얻어왔다는 것이라, 그만큼 식상해지기 쉽기 때문에. 따라 대중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잘 풀기 위해선 나름 기술이 필요하다. 시나리오에서부터 연출, 편집과 음악에 이르기까지 이 복합적이고도 미묘한 리듬과 템포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하 감독은 데뷔작에서부터 먼 길을 돌아 그 방법을 터득했다.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만드는 내공 만큼은 출중하다. 사극이라서가 아니라, 노출 때문이 아니라, 멜로드라마기 때문에 관객에게 먹혀드는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했다. '쌍화점'에서 중요한 건 인물 간 감정의 소통이다. 문제는 길이다. 배분과 욕심 사이의 황금비를 찾는 일. 타이트하고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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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딥의 '공작부인 : 세기의 스캔들'영화|애니|TV 2008. 10. 22. 23:03
어딜가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한 듯. 18세기 영국 상류층을 무대로 삼았지만, 국내 사극으로 치환해도 충분히 이해가 될만큼 대(代)에 집착하는 귀족의 모습은 조선시대 양반집과 다를 바 없다. 로맨스라기보단 치정극이 더 잘 어울릴테지만 '발몽'이 '스캔들'로 거듭났듯, 이 시대 귀족들의 모습들 또한 우리네 TV 사극에서 친근하게 벌어지는 암투와 부정, 애욕이 섥힌 복잡미료한 관계 같다. 보다 광활하고 이국적인 풍광과 언어가 다르다는 걸 빼곤. 화려한 의상과 와이드의 묘미를 잘 살린 구도들은 인상적이지만, '세기의 스캔들'이라는 제목에 걸맞을 정도로 임팩트를 주진 못한다. 오히려 아기자기한 BBC 미니시리즈 사극 같다고나 할까. 이런 분위기에 껌뻑 하는 아카데미는 좋아 죽겠지만, 가뜩이나 사극이 강세인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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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의 '궁녀'영화|애니|TV 2007. 10. 21. 06:02
장르의 혼용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첫째 만드는 사람이 장르 자체에 익숙하지 않거나, 둘째 장르에 맞지 않은 이야기나 설정을 결합해 장르의 색채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장르는 일종의 규칙이고, 컨벤션이다. 리듬과 템포, 형식이 있기에 그걸 맞춰주거나 무너뜨리고, 엇박으로 갈 때 재미가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노련한 감각이나 센스 없이는 장르 영화 연출하기란 쉽지 않다) 아울러 이종교배에서 오는 재미 역시 그 둘의 이질적인 표피가 남아있기에 가능한 거다. 아쉽게도 [궁녀]는 후자의 실수를 범한다. 추리물 이야기에 공포물 이야기을 섞어 장르의 규칙이 깨진 셈이다. 물론 [혈의 누]나 [극락도 살인사건], 혹은 딕슨 카의 많은 추리소설이 그렇듯 성공한 좋은 예도 있다.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