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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들어 잠자리가 바뀌었다.
    잡담 2016. 2. 4. 07:17

    재작년에 태어난 조카들로 인해 내 생활도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일단 이 녀석들이 내 방을 너무 좋아한다는 거다. 방에만 들어서면 빽빽 울던 울음도, 짱알거리던 투정도 어느새 그치고, 호기심 잔뜩 어린 눈초리로 이곳저곳을 살피느라 정신없다. 나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어느 것부터 만져봐야 하나 골똘히 고민하는 악동들 같다. 그래서 가끔 우는 아이들을 달래려 피난처로 내 방이 활용되곤 하는데, 이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보는 건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 패턴을 가진 내 수면욕이다. 다른 방에서 쪽잠을 자거나, 침낭도 활용해 봤지만, 원천적인 해결점을 전혀 가져오지 못해 좌절하던 차, 작년 말 이케아에 놀러갔다 기가 막힌 방법과 조우하고 말았다. 그 이름하여 벙커침대! 짜잔!!

    정확한 명칭은 로프트 침대 혹은 2층 침대라 불리는 녀석으로, 아래 공간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지상 1m 40cm 위에선 방해받지 않고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 내겐 가히 혁명과도 같은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셈이었다. 이 놈만 있으면 더 이상을 방을 옮겨다니며 잘 필요도, 침낭이나 매트를 펴고 접을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작년 연말 바리바리 달려가 적지 않은 예산을 희생해가며 벙커침대를 귀하게 모셔왔다. 엄청난 부피와 무게를 자랑하는 넓고 길쭉한 두 개의 박스에 담겨서. 홀로 조립하는 건 너무나도 힘들다는 충고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SOS를 쳤는데, 힘없는 노인분들과 같이 조립하는 것 또한 나름 고통이었다. 벌 세우는 것도 아니고 못할 짓 한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조립하고 나니 조금은 뿌듯하더라. (두 분은 결국 제야의 종소리도 안 보고 주무셨다는...)

    딱 올 병신년 정월초하루부터 올라가 자기 시작했으니 이제 막 한달이 갓 지난 셈인데, 나름 만족스럽다. 병실 침대처럼 폭이 조금 좁고(90cm다), 상상한 거보다 더 흔들린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의외로 천장과 코를 맞대고 자니 그 압박감(?)에 의해 쉽게 잠에 빠지고 만다. 믿거나 말거나. 이건 그냥 기절 하는 느낌인데, 얇지만 제 역할을 하는 마약 메모리폼 매트리스 덕분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가끔 택배 벨소리에 급해 천장과 부딪치고, 저혈압으로 사다리에서 내려오다 다리가 풀려 별 볼 적한 상황도 처했지만, 그럭저럭 익숙해지니 상체를 피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요령도 생겼다. LED 독서등도 붙여 누워서 책도 보고, 바구니도 달아 핸드폰에 간식과 오락기도 놔두기도 하고, 난간엔 옷걸이를 걸어 빨래도 말린다. 공중에 떠서 자는 거라 춥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는데, 따스한 공기는 위에 머무른다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그다지 춥지도 않다. 가끔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꾸거나 옆으로 넘어가거나 밑판이 빠지면 어쩌나, 혹은 지진이 난다면? 자꾸 상상해서 문제지.. 

    조카들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미운 그 나이가 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올초 바뀐 잠자리는 퍽 만족스럽다.  (설치 사진은 더러운 방의 사정으로인해 차마 공개하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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