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레이 셀레스틴의 '액스맨의 재즈'
    책|만화|음악 2016. 1. 8. 21:05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인 1919년 미국.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에선 6명의 사람들이 도끼로 살해되는 잔인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아직까지 실제 범인이 잡히지 않은 이 미제 사건을 소재로 삼은 레이 셀레스틴의 데뷔작 [액스맨의 재즈]는 허구와 실제 사건을 교묘하게 섞어낸 독특한 상상력과 정교한 구성을 뽐내는 추리소설이다.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가늠할 수 없게 사건 배경에서부터 인물들까지 탄탄하게 교차해낸 이 소설은 건조한 문체에 생생한 배경묘사를 곁들여 마치 실제 사건을 기술해낸 범죄 논픽션을 읽는 듯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앤드류 테일러, 마이클 콕스, 스테파니 핀도프의 소설들처럼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막 발전해가는 미국을 무대로 제임스 엘로이 스타일로 건조하며 차갑게, 그리고 다층적으로 진행시키는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숨겨진 사건의 복잡하고도 추잡한 일면을 상상하고 새롭게 구상해낸다. 더욱이 인상적인 건 그가 본토박이 미국인이 아닌 영국인이라는 사실.

    [액스맨의 재즈]는 세 명의 주인공들이 씨실과 날실로 엮듯 도끼 살인마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주된 플롯이다. 이런 이야기로 가장 대표적인 건 앞서 얘기한 제임스 엘로이의 범죄소설 걸작 [LA 컨피덴셜]을 들 수 있는데, 그와 유사한 듯 또 다르게 풀어낸다. 서로 깊은 사연들로 엮이고 상처 받고, 도움 얻는 그들과 달리 이 소설에선 마이클과 루카, 아이다 세 명의 주인공들은 거의 마주치지 않고 자신만의 단서를 찾아 도끼 살인마와 그에 얽힌 사건들을 재구성해 나간다.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도끼 연쇄 살인사건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하나의 사건이 세 명의 시점을 통해 다 다른 면모들을 들춰내고 부각시킬 수 있게 만드는 입체적인 구성을 취한다. 그래서 굉장히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작가가 뿌려주는 단서들을 재조합하기가 쉽지 않은데, 결말쯤에 이르러선 그것들의 아귀가 맞아 딱 떨어지며 사건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빅 재미’를 던진다. 초반엔 조금 산만하고 뻑뻑한 전개라 쉽게 몰입되기 어려운 점은 있지만, 중반 이후 단서들이 하나씩 발견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탄력을 받아 촘촘한 구성을 쫓아 쉬이 달려간다. 


    더욱이 주요 등장인물들 중 실제 유명인인 루이 암스트롱을 배치해 눈요기를 끄는 점도 있으며, 야만과 이성이 공존했던 100년 전의 혼돈기 상황들이 생생히 담긴 배경들과 크레올을 비롯한 美남부의 전형적인 인종차별에 대한 악습들, 미국 현대사와 범죄 기록에 대한 치밀한 고증들이 결합돼 잊을 수 없는 잔향을 남기기도 한다. 실제 미제 사건을 토대로 작가의 아이디어가 결부돼 가공의 이야기로 재탄생된 탓에 많은 독자들이 기대할 것 같은 시원스런 결말로 이어지진 않지만, 후일담에 주인공들이 루이지애나에서 시카고로 이동해 만나며 알 카포네라는 전설적인 갱과의 대결을 암시하는 엔딩은 [배트맨 비긴스]에서 조커 카드를 보여주며 속편 [다크나이트]에 주된 악당을 암시했던 것 만큼이나 소름 끼치고 기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다소 유머나 활력이 부족하고, 묘사나 전개가 빽빽한 맛은 있지만, 처녀작임에도 이런 대단한 내공을 보여준 레이 셀레스틴의 솜씨는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쓰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 장면이나 구성이 매우 극적이고, 여러 단서나 맥거핀의 활용, 미장센을 강조하는 비주얼적인 묘사들도 인상적이다.  

    무대가 음악의 고장 뉴올리언스고, 앞서 언급했던 대로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로 루이 암스트롱이 나오는 만큼, 더욱이 제목에조차 재즈가 드러나는 터라 재즈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물론 아직 대가가 되기 전의 젊은 루이가 나오고, 재즈의 인기 또한 정점에 오르기 직전이여서 직접적인 셋 리스트들을 소설 중간 중간에 살펴볼 순 없지만, 연주자로서의 고뇌라던가, 루이 암스트롱에 대한 사생활의 일면들, 재즈가 이 고장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배경으로서의 세팅이라던가, 이런 세밀한 부분들의 재미들이 소설을 읽는 내내 크게 작용한다. 따라 루이 암스트롱의 앨범을 틀어놓고 읽는 것도 상당히 독특한 풍취를 안겨준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 곡은 [악의 교전]에서도 삽입돼 섬뜩한 인상을 던졌던 - 흥겹지만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맥 더 나이프 Mack the Knife’로, 무시무시한 칼잡이 맥이 돌아왔다는 가사와 (허구이긴 하지만) [액스맨의 재즈]에서의 루이의 젊은 시절 경험담과 겹쳐져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들리기도 한다.


    레이 셀레스틴이 이 작품의 후속작을 준비 중이라니, 다시 한 번, 아니 이번에야 말로 본격적으로 주인공들이 협력하며 사건과 마주하는 모습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액스맨의 재즈]는 프롤로그로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시작이었다. 영국추리작가협회 존 크리시 대거상 수상이 이를 증명한다. 앞으로의 시리즈가 기대된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