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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
    책|만화|음악 2015. 8. 6. 06:00

    스티븐 킹이 돌아왔다. 아니 사실 거의 매년, 그는 돌아온다. 국내에 번역되는 속도가 느리거나 아예 번역이 안 돼서 그렇지. 킹은 꾸준히 신작을 써왔다. 1986년엔 눈이 썪어들어갈 정도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영화 [맥시멈 오버드라이브]라는 호러물을 감독했음에도 [그것]이란 걸작을 퍼냈고, 1999년 목숨이 오락가락할 정도의 사고를 당한 후에도 보란 듯 [드림캐처]를 완성했다. 1974년 [캐리]로 데뷔한 이래 엄청난 성공과 영광을 누렸음에도 그처럼 꾸준히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사랑 받아온 작가는 드물 것이다. 그것도 아멜리 노통 정도의 분량도 아니고 수학 정석과 비견될 정도의 두꺼운 페이지를 거의 매년 선보이는 작가는 더더욱 더. 스티븐 킹은 과작보다는 다작이 어울리는 작가다. 작품마다 질적인 편차는 있지만 재미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킹에게 있어 실망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이번에 나온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2014년 1월에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로 - 그리고 킹은 그해 11월에 [리바이벌]이란 소설을 퍼냈고, 올 6월에는 (벌써)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속편인 [파인더스 키퍼스]까지 출간했다! 손에 모터가 달린 건지, 아님 창작의 신에게 빙의된 건지 모르겠지만 - 그의 첫 하드보일드 탐정물이라 했다. 세상에. 그가 40년간 온갖 종류의 소설을 써왔는데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그 첫 하드보일드로 그 해 미국 최고 추리소설에게 수여하는 에드거 최고 장편상을 수상했다는데 두 번 놀랬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스티븐 킹이 작정하고 처음 쓴 추리소설이다. 그런데 기대감이 안 생긴다면 거짓말. 소설의 줄거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묻지마 테러를 벌인 살인마와 정년 퇴직한 형사의 쫓고 쫓기는 내용이 다이기 때문에. 하지만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기대감과 만족치가 있듯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고전적인 설정과 익숙한 플롯을 가지고 킹은 자신만의 하드보일드 추리물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범인과 탐정을 미리 던져주고 둘이 핑퐁 게임을 하며 주고받는 대결의 양상은 굉장히 빠르고 전복적이며, 주도권을 독자에게 뺐기지 않고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겨 끝으로 달리게 만든다. 킹의 드라마트루기는 매우 능수능란해서 읽다보면 묘한 무아지경에 빠지고 마는데, 마치 영화를 보듯 긴박한 상황 묘사와 캐릭터에 빙의된 듯한 기분마저 드는 심리적인 묘사가 병행되며 단순한 이야기에 깊이와 특유의 세계관을 부여한다. 따라 앞뒤좌우위아래 입체적인 무대가 세팅되며, 사건의 종결을 향해 복합적으로 배치된 과거와 현재의 사연은 화문석처럼 촘촘히 얽혀 단단한 내용을 만든다. 고전적인 편지로 시작한 범인과 탐정 간의 소통은 곧 SNS로 변형돼 현 세태를 담아내고, 보스톤 마라톤 폭발사고나 맥도널드 차량 돌진 사고와 같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세팅된 시작과 끝은 무분별한 광기와 분노, 재난에 대해 얼마나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가 다시금 공포를 되새기게 만든다.

    탐정 빌 호지스와 범인 브래디는 모두 이전 킹의 소설들에서 등장했을 법한 캐릭터군이다. 등장민물뿐만 아니다. 사람을 치는 자동차나 쏘시오패스 살인마의 비극적인 가정사, 새로운 기술과 현상에 대한 지대한 관심사 등은 그의 세계관에서 그리 낯설거나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살을 생각하는 은퇴한 형사나 조력자로 등장하는 독신 여성, 사건을 알리는 편지와 의뢰인 간의 사랑 등은 모두 이전 이 장르에 통용되던 기술과 법칙들이었다. 그럼에도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새롭게 만드는 건 장르의 전복적인 구축과 재해석에 있다. 킹은 그 기존의 요소들을 가지고 조금 다르게 활용해낸다. 우선 탐정 위주, 혹은 범인 위주의 단선적인 시점축을 무너뜨리고 양쪽을 교차로 배치해 대결 양상을 띄며 긴장감을 높혔고, 팜므 파탈이나 유혹과 외압에 굴복한 동료 대신 예의 바른 흑인 청년과 우울증 걸린 중년 여성을 조력자로 내세운다. 더욱이 탐정이 직접 '행동'하지 않으며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도 의외성을 갖기에 충분하다. 킹은 이미 이 장르를 자기식 대로 서술하는 데 있어 두려움이 없는 셈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이미 미국에선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후속편이 출간되었다. 킹은 이 자신만의 하드보일드 시리즈를 삼부작으로 완성짓겠다고 공표한 상태다. 2016년에 출간될 마지막 편인 [엔드 오브 왓치]도 초고 집필이 끝났다고 하니 그의 성실함에 두손 두발 다 들 지경이다. 남은 건 부지런히 번역돼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숙달된 이야기꾼의 추리소설 시범은 완벽한 예를 남기며 끝을 맺혔다. 킹에게 있어 장르는 무색하다. 스티븐 킹이 바로 하나의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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