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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비드 발다치가 엮은 '페이스 오프'
    책|만화|음악 2015. 6. 25. 05:07

    꿈의 태그매치다. 어디 누가 해리 보슈와 패트릭 켄지가 만날 거라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잭 리처’와 ‘닉 헬러’가 한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루카스 데븐포트와 릴리 로텐부르크’와 팀을 짜 수사를 한다. 심지어 오만가지 이상한 사건들과 마주친 바 있는 ‘펜더개스트’는 무시무시한 ‘구스범스’ 세계 안으로 떨어진다. 이런 단편들이 자그마치 11편이다. 한 지면 안에서 무려 22팀(정확히는 23명)의 작가들이 만든 캐릭터들이 대결(이라 쓰고는 협력? 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렇다. 요즘 트렌드대로 얘기하자면 황금가지 밀리언셀러에서 나온 단편집 [페이스 오프]는 추리/스릴러 계의 ‘어벤져스’라 할 수 있다. 쟁쟁하기 그지없는 영미권 스릴러 작가들이 각자 이해사정들을 뒤로 한 채 이 앤솔로지를 위해 뭉쳤다. 단순한 팬서비스 차원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과 캐릭터를 걸고 독자에게 다가간다. 이를 접하는 독자들 입장에선 기대감에 전율을 감출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함정이 존재한다. 장르문학의 불모지인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헤더 그레이엄과 F. 폴 윌슨, M.J. 로즈와 존 레스크로아트, 피터 제임스, 제임스 롤린스, 린다 페어스타인, 스티브 베리 등의 작품들은 단 한편도 한국어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앞서 소개한 제프리 디버와 짝패가 된 존 샌드포드의 루카스 데븐포트 시리즈 역시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조셉 핀더의 번역된 소설들은 절판되었고, 그마저도 여기에 등장하는 닉 헬러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얼론이었다. 레이먼트 커리와 리사 가드너 역시 마찬가지다. 소수 번역된 이들의 책들은 지금 모두 절판 상태다. 국내 독자들은 아쉽지만 이 쟁쟁한 스릴러 앤솔로지를 오롯이 즐길 수가 없다. 이 환상의 태그매치가 갖는 의미들과 잔재미를 곱씹을 여지가 아무래도 적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단편집을 기획한 데이비드 발다치의 서문과 각 단편 앞에 짤막하니 소개된 작가들과 캐릭터들의 집필 사연들을 통해 그 분위기나마 조금씩 짐작할 수 있다는 게 위안거리다. 책 말미에 첨부된 작가들 소개 또한 좋은 가이드가 된다. 이걸로 만족할 수 없다면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나온 [라인업]이란 책을 들춰봐도 몇몇 캐릭터들은 도움이 될 순 있겠다.

     

    본편에서 가장 감정이입이 잘되고, 유감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은 마이클 코넬리와 데니스 루헤인이 함께 쓴 [야간 비행]이다. 2015 에드가상 단편 부문 후보에도 오른 이 소설은 국내에 많이 소개돼 익숙한 해리 보슈 시리즈와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이종교배다. 짧지만 두 작가들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난다. 그 특유의 유머도, 어두운 인간의 그림자도, 그리고 선한 정의도 함께 가지고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 가장 긴 분량을 가지고 있는 제프리 디버와 존 샌드포드의 [라임과 프레이]도 나쁘지 않다. 다른 단편들이 아무래도 본편 맛보기 같은 축약된 분위기를 지니는 것 같은 분량의 압박이 있는데 반해, 이들 단편은 (아무래도 가장 길다보니) 그 제약에서 빗겨나 있다. 호흡도 괜찮고, 사건 흐름도, (존 샌드포드 소설을 읽지 못해 어떤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프리 디버의 작풍도 반갑다. 리 차일드와 조셉 핀더가 함께 한 [대단한 배려]도 좋은 마무리다. 무엇보다 위트 있고, 한정된 공간과 분량 안에서 각자의 캐릭터들을 잘 소개한다. 이 앤솔로지 성격에 그야말로 딱 맞아 떨어지는 단편이 아닌가 느껴졌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R.L. 스타인과 더글라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가 함께 한 [가스등]이다. 섬뜩하면서도 이죽거리는 R.L. 스타인 분위기도 존재하고, 초자연적인 현상과 마주치는 팬더개스트 시리즈의 기조와도 맞아떨어진다. 애매모호하니 환상특급과도 같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 앤솔로지를 기회로 국내에 이 쟁쟁한 페이지 터너들의 소설들이 소개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번 단편들만 맛보다 감질나서 죽겠다. 국내 장르 소설팬들은 이래저래 슬프다. 고문도 아니고 찔끔찔끔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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