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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
    책|만화|음악 2014. 2. 28. 21:14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은 생생하고 참혹한 노예체험기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젊은 가장이 피부색이 다르단 이유만으로 납치돼 가축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다. 다시 신분을 복권하기까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12년간의 노예 생활은 상상보다 잔인하고 끔찍하다. 절망과 좌절, 고통을 한없이 담담하고 겸허한 필치로 소회하는 노섭의 글은 그래서 더 슬프고 가슴 아프다. 그는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기보다 의문과 한탄을 쏟아낸다. 일개 북부의 자유인 검둥이로서 해결할 수 없는 이 잘못된 환경과 사회가 그저 원망스러웠으리라.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라는 큰 벽 앞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공포와 눈물이 읽힌다. 그 감정을 꼭꼭 눌러담아 18세기 중엽 미국 남부에서 행해진 노예제에 대해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전까지 백인들에 의해 기술된 문학과 달리, 흡사 르포를 읽는 듯한 치밀함과 현장감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솔로몬 노섭은 이 참상과 실태를 알리고자 노력했고, 이는 일백프로 성공했다.

    자신의 체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극적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진 않다. 긴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서 조금 지리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납치되고, 팔려가고, 또 옮겨진 궤적에 따라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섞어내 풀어내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다. 그 입담과 기억력이 대단하다기 보다 그만큼 사무치고 각인됐기 때문이 아닐까. 모르고 당하던 남부 노예들과 달리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자유 신분이었기에, 그 비논리적이고 비윤리적인 시스템과 광경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버젓이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워싱턴에 노예수용소가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나 가축들을 사고파는 시장과도 같은 노예매매 광경을 묘사한 부분, 배려 깊고 영리한 사람들도 있지만 관습적으로 노예제가 내려오던 탓에 그 비인간적인 폐단을 망각하게 되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까지. 솔로몬 노섭은 자신이 경험한 참담한 노예 제도에 대한 실상을, 미국의 가장 어두운 이면의 역사를 꾸밈없이 담아내고 있다. 이렇게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이 수반하는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가족과 자유에 대한 열망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운 좋게도 소설을 읽기 전 시사회에서 스티브 맥퀸이 감독한 영화 [노예 12년]을 먼저 볼 수 있었다. 2013년 말에서 2014년 초까지 영화제에서 상이란 상은 다 휩쓸고 있는 이 영화는 소소하게 합쳐지고 생략된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제법 원작에 충실하게 각색되었다. 좀 더 디테일한 묘사와 설정에 대해 알고 싶다면 원작이, 노예제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느끼고 싶다면 영화 쪽이 각각 더 효과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감독 데뷔 전 잘 나가던 영상 아티스트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맥퀸 감독은 정극 스타일로 진중하게 풀어냈다. 마치 [컬러 퍼플]에 [쉰들러 리스트]가 섞인 듯한 느낌인데, 이야기 중 가장 가슴 아픈 팻시 사연이 전자를 떠올리게 한다면 그녀를 괴롭히는 에드윈 엡스는 후자의 악랄한 독일 장교를 연상케 한다. 비참한 노예제의 모습과 홀로코스트의 실상이 겹쳐지며 추악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몸서리 치게 만든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영화이기도 한데, 주인공 솔로몬 노섭역을 맡은 치웨텔 에지오포부터 악마 같은 마이클 패스벤더, 셜록을 벗어나 선한 느낌이 잘 어울리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인상 깊은 열연을 펼쳐준 팻시 역의 루피타 나옹 그리고 폴 다노와 폴 지아마티 그리고 브래드 피트까지 잊을 수 없는 연기들을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여년전 일이지만 사실 아직 '노예 12년'이 끝난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났어도 인간의 지배계층에 대한 탐욕과 잔인성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현재 세상은 평등하고 자유는 누구에게 주어지는 권리라고 하지만 실상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계층으로 나뉘어 눈치를 보며 또 죽어라고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직접적으로 일어난 염전 '섬노예' 사건을 굳이 들지 않아도, 또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을 거론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여전히 답답하고 무기력한 사회를 바라보며 탄식을 내쉬고 있다. 쉽게 변하지 않을 모습들이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서서히 바뀌어간다는 사실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솔로몬 노섭이 그 끔찍하고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처럼. [노예 12년]은 그 작은 용기와 결실에 대한 위대한 기록이다.

    덧. 검은색, 그것도 아주 속까지 새까만 연필 세자루가 동봉해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곰곰히 생각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아직도 의미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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