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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e Young의 'Sleepless Night'
    책|만화|음악 2013. 12. 17. 07:31


    희영이 2집을 발표했다. EP까지 벌써 3장의 앨범이다. 지난 3년간 그녀는 꼬박꼬박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각박하고 획일화된 음악 시장에서 누구보다 노력하고 사유했다. 부지런함과 성실성은 창의력과 감수성에 꼭 비례한다 할 수 없지만, 그 투쟁의 시간들이 보다 많은 기회와 도전을 준다는 건 자명하다. 희영은 자신의 색깔을 드러냈던 기존 앨범에서 더 나아가 색다른 모습과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시도를 펼쳐보인다. 녹음실을 벗어나 텅 빈 헛간, 낡은 교회를 유랑하며 2트랙 녹음기로 단촐하게 그 기운과 분위기까지 담아낸 것이다. 작은 실수와 잡음들이 들어가도 이를 감수한 이런 시도들은 적적하고 고고한 앨범의 느낌을 더욱 강조한다. 저녁에서 새벽 시간대로 이어지는 녹음을 통해 밤기운마저 담아낸 그녀의 노래는 쓸쓸하고 외롭다. 그러나 그녀만의 따스함마저 모두 버린 건 아니다. 긴 불면의 밤이 찾아와도 그녀는 언제나 다시 꿈 꿀 수 있음을, 그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살랑거리며 싱그럽던 봄 기운의 뮤즈는 어느새 차가운 추위와 함께 도도한 불면(不眠)의 여신이 돼서 돌아왔다.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는 모습과 달리 매번 어쿠스틱의 색채를 지닌 포크 스타일의 음악을 고수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녀에게 있어 포크란 치유와 소통의 방법이다. 외지인으로 겪었을 남모를 고민과 고독을 극복할 수 있었던, 성찰의 실체였다. 기존의 포크에서 클래시컬한 첼로와 우쿨렐레, 페달 스틸 등의 하와이언 악기를 끌여들었던 그녀는 이번엔 만돌린과 벤조, 월리처라는 악기의 합류를 통해 보다 더 미국 본토의 뉘앙스를 담아내고 있다. 일종의 컨트리 장르와도 상통하는 분위기를 통해 한국인인 그녀의 존재감을 더욱 도드러지게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EP와 1집에서 프로듀서를 맡았던 사울 사이먼 맥윌리엄스는 연주와 엔지니어로 힘을 보탰고, 희영 자신이 프로듀서로 전면에 나서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발현했다. 전작들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계절 탓만 했었는데.


    총 12트랙에 36분에 이르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밤의 여정이 펼쳐진다. 첫 곡을 여는 건 묵직한 첼로의 저음이 묘한 스윙감을 선사하는 기타 연주와 효과적으로 연계된 'Intuition'이다. 2분 정도의 짧은 인트로처럼 느껴지지만 스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이번 앨범의 색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본 앨범의 정체성에 대한 직감이랄까. 그 뒤로 이어지는 'Stars In New York City'는 서정적인 기타와 잿빛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곡으로, 중반 이후 중첩되는 일렉 기타와 첼로, 벤조가 만들어내는 현의 스펙트럼이 별빛처럼 아름답다. 쓸쓸하고 간절하지만 슬프지는 않은 곡이다. 'Stranger'는 이방인인 그녀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곡으로 마치 기차 타고 어딘가 떠나는 듯한 규칙적인 비트감과 컨트리송을 연상케 하는 만돌린 사운드가 애잔하면서도 강렬하게 펼쳐진다. 흥겨운 클랩까지 덧붙여지지만 그럴수록 낯선 사람의 고립감과 슬픔이 더욱 강해져만 간다. 

    희영 자신이 가장 맘에 들어한 'Whiskey To Tea'는 스산한 마음의 풍경이 읽히는 곡으로 고조되어가는 감정의 기복을 잔잔하게 담아낸다. 차에서 위스키로 변해가는 흐름이 절절하지만 절제돼있다. 오버더빙된 그녀의 목소리와 투명한 피아노의 조화가 앞선 트랙과 다른 파고를 남긴다. 기타와 만돌린이 가세한 포크락인 'Show Me What You`ve Got'는 편곡적인 방향성 때문에 역시나 컨트리적인 뉘앙스의 사운드가 들리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의 색채감을 투영시키는 게 인상적인 노래다. 경계에 선 듯한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는 가사와 함께 쓸쓸한 회한과 고독이 묻어나는 분위기가 더 절절하게 만든다. 마치 데이비드 카버의 단편을 읽는 듯한 가사의 'Happy New Year'는 곡의 진행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게 만드는 독특한 지점의 노래로 무엇보다 현의 질감이 심금을 간지럽히는 분위기가 색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노래 'Sleepless Night'는 여전히 그녀의 불안과 고독을 표출하고 있다. 다만 괴롭고 어둡다기보단 쓸쓸하고 슬프다. 조심스럽게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 속에서 묻어나는 안타까운 자조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Slow Dance Song'는 제목과 달리 춤곡이 아니다. 마지막 간주에서 급변하며 반전처럼 강렬한 비트의 사운드를 선사하긴 하지만, 그전까지 몽환적이고 단조로운 분위기가 지속되며 최면을 걸듯 중얼거린다. 머리속에 짙게 쌓인 상념들을 춤추게 만드는 주문의 노래인 듯 하다. 그 뒤 흘러나오는 'Then, Fade'는 빈티지한 포크락 사운드가 주는 특유의 감성을 점층시키는 노래이고, 'I Want You Only'는 일렁이는 기타결이 희영의 잿빛 보이스컬러와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곡이다. 특히 목가적이고 영가스러운 - 두텁게 쌓은 코러스는 가사 속에 묻어나는 사랑을 종교적인 울림처럼 짜릿하게 느껴주게 만든다. 잔잔하지만 전율을 주는 멋진 곡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What`s A Girl To Do?'는 이 모든 걸 마무리 짓는, 앨범 중에서 가장 밝은 곡의 노래로, 기나긴 불면의 밤을 보내다 잠들기 직전에 들릴 법한 위로처럼 들린다. 스토리텔링을 의도하지 않았다지만 이런 앨범의 배치는 행복을 거머쥐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라는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삶에 대해 의미하는 듯 하기도 하다. CD에는 보너스트랙으로 'He Was A Cloud'가 실려있다. 마치 동화같은 이 잔잔하면서도 다소 심심한 노래는 그녀만의 스타일을 다시금 곰곰히 곱씹게 만든다. 짙은 여운이나 일말의 회한을 남기기보단 안으로 곰삭히는 덤덤한 어조의 노래가 더 큰 울림을 준다.

    희영은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다. 여전히 포크 사운드에 기반을 두고 자신만의 감수성과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색다른 시도와 성찰로 천천히 변화를 주며 자신의 폭과 한계를 넓혀가고 있다. 미국과 한국 그 경계 어딘가에서 영어로, 또 한국어로 노래하는 그녀의 곡들은 대중적인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멀지 몰라도, 그 진심만은, 본질만큼은 확실하게 전달될 것이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좋은 뮤지션이 되어가고 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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