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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스윗의 '새 폴더'
    책|만화|음악 2013. 9. 12. 21:08


    노란색 새 폴더엔 '야구동영상'과 '유승호' 외에 다양한 연애담이 담겨있다. 상큼하고 발랄한 분위기부터 엉뚱하고 귀여운 매력과 아릿하고 슬픈 뒷모습까지. 요즘 청춘남녀의 솔직담백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특별히 새롭진 않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지도 않는 그런 미묘한 감정들. 그 싱숭생숭한 빈틈을 파고드는 건 비음이 매력적인 비스윗의 달달한 목소리다. 스위트한 톤으로 스위트하지 않은 이야기들까지 조근조근 털어놓는 그녀의 노래는 일단 편안하다. 애절한 사랑 타령도 아니고, 절절한 비가도 아니며, 그렇다고 닭살돋게 만드는 로맨스도 아니다. 주변의 근황들을 두런두런 늘어놓는 새침한 수다처럼 솔직하고 감성적이다. 이제 2집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작업들을 두루 거쳐온 이력답게 그녀는 자연스럽고도 꾸밈없는 태도로 연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나이대가 갖는 통통 튀는 매력과 감수성을 잘 간직한 채. 그녀의 '새 폴더'는 마치 몰래 훔쳐보는 여동생의 비밀일기장 같다.

    전체적인 느낌은 포크이지만 고루하거나 낡지 않다. 오히려 파스텔 뮤직만의 전매특허인 스윗팝에 가깝다. 요새 유행하는(솔직히 개인적으론 세뇌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강한 후킹과 드라마틱한 멜로디를 찾아볼 순 없지만 산뜻한 라인과 직설적인 가사는 쉽게 귀에 들어온다. 영롱한 기타결을 잘 살린 사운드를 메인으로 많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피아노 등을 활용해 청아한 자신의 음색을 최대한 살리는데 주안점을 둔다. 탁월한 선택이다. 채우기보단 여백을 통해 깔끔한 보이스의 매력을 최대한 부각시켰다. 조금은 비음이 도드라진 높은 미성이라 애잔하고 씁쓸한 감성을 자아내는 게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무덤덤하게 관조적으로 감정을 싣지 않고 부르며 허스키한 톤을 이끌어내며 더 큰 비애감을 살리는 운용의 묘를 보여준다. 각각의 노래는 아쉬울 정도로 짧지만 여운은 제법 길게 남는 편이다. 총 10 트랙 36분에 걸쳐 꼼꼼히 청춘연애백서를 완성시킨다. 그것이 Be sweet인지, 非 sweet인진 모르겠지만.


    경쾌한 기타 두 대로 시작하는 '촉촉해'는 비스윗의 매력을 제대로 살린 싱그러운 톤의 노래로 키스에 대한 설렘과 기분 좋은 느낌을 풋풋하게 풀어낸다. 별다른 편곡없이 기타 두 대와 코러스로만 이루어진 사운드가 편안하고 감미롭다. 그 뒤를 잇는 'Suddenly'는 갑작스레 맞이하는 이별에 전혀 대처되지 않는 감정들을, 그 주변의 모습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노래로 기타와 피아노가 두드러진 발라드다. 서글픈 심정을 애둘러 담백하게 고백하는 그녀의 유리같이 깨끗한 보이스컬러가 오히려 더 처연하고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 '입술에 뭐 바르지 좀 마'라는 제목이 눈에 띄는 세번째 곡은 마치 차분한 박혜경 같은 느낌이랄까. 톤이 조금 더 정갈하고 소소하지만 그 특유의 통통 튀는 매력이 느껴지는 곡이다. 어쿠스틱과 일렉 기타 두 대를 병행해 귀여운 노래를 만들었다. 자꾸자꾸, 생글생글, 살금살금, 다가와도 같은 단어를 통해 입에 붙는 어감을 살린 게 재밌다.

    2집의 타이틀 곡인 '너의 컴퓨터 속 야구 동영상'은 제목에서 유추 가능하듯 모두가 상상하는 그 민망한(?) 상황을 다룬 곡이다. 진지한 톤으로 이런 발랄하고 코믹한 상황을 묘사하는 게 인상적이다. 남성들의 '야'구 '동'영상에 굿바이 로맨스를 노래하는 여성이 조금 가혹하다 느껴지긴 하지만 그 시각차가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 같다. 비터스윗이라는 그녀 이름에 너무나 잘 맞는 상황이자 그런 느낌의 곡인듯. 시치미 뚝 떼고 이런 위트있는 노래들을 만들어 모아봐도 좋을 것 같다. 기타 한 대로 노래하는 '사진을 보다'는 가을에 잘 어울릴 법한 분위기의 곡으로 홀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절절한 심정을 담고 있다. 약간 잠긴듯 회한에 젖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속삭이는 마지막 가사가 여운을 증폭한다. 그 뒤로 이어진 '부서지다'는 유일하게 앨범에서 그녀가 부르지 않는 곡으로 소수빈이라는 남자 보컬이 피쳐링하고 있다. 가장 락적인 사운드를 구사하고 있으며 남자판 비스윗이라 부를 만큼 청아하고 시원한 보컬이 인상적이다. 이별에 부서져 내리는 심정을, 흩어져버린 연인을 노래한다. 의외로 이런 락킹한 사운드도 잘 어울리는 구나 싶어 놀랐다.


    '가을밤'이라는 스산하고 씁쓸한 제목과 달리 배신감 느끼게도 커플염장신고송이다. 다행히 19금스러운 상황은 나오지 않고 스리슬쩍 플라토닉한 관계로 묘사하지만 오글오글거리는 고백에 '화가 난다!!' 그렇지만 순수하고 귀여운 곡. 이런 달달함 뒤엔 다시 이별에 얽힌 '다른 사람 곁은 찬란한가요'가 이어지는데, 잔혹스러운 제목처럼 먹먹하고 쓸쓸한 심정이 짙게 묻어난 노래다. 절절하게 감정을 쏟아내기보단 성대를 지긋이 눌러 허스키한 톤으로 슬픔을 표현한다. 허스키한 장나라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앞서 소수빈이 부른 '부서지다'가 이어지는데, 이번엔 어쿠스틱 여자 버전으로 파워풀한 곡조를 재현하기보단 피아노와 기타로만 허무한 감성을 드러낸다. 남자 버전에서 조금의 미련과 아쉬움, 집착의 응어리가 남아있다면 여자 버전에선 아련한 회상과 관조, 반추에 가까워 보인다. 두 버전을 비교해 듣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마지막 트랙을 장식하는 '기다려'는 이별에 대한 아쉬움, 새로 오게 될 감정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하는 노래로, 기타의 트레몰로 주법이 가을 바람처럼 스산하게 몰려온다. 자신에게 주문처럼 되네이게 될 말 '기다려'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쓰디쓴 곡이다. 그렇게 비스윗은 짙은 여운을 지장처럼 남긴다.

    비터스윗은 비스윗이 되었다. 그녀는 이 중의적인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달콤쌉싸름한 건 인생의 보편적 진리. 그녀가 연애담에서 벗어나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바라보고 그려낼 음악이 기대된다. 비스윗이 무궁무진한 새 폴더들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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