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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 보울러의 '블러드 차일드'
    책|만화|음악 2011. 10. 6. 23:34

    뺑소니 사고로 기억상실을 경험하게 된 소년.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런 상황 속 의식의 한편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머리칼, 푸른 눈동자의 소녀와 마주친다. 어디선가 본 적도 없는 그 신비스러운 모습에 소년은 천사라 칭하지만, 자신의 과거조차 완벽히 복구되지 않은 그에게 적지 않은 두려움과 혼돈의 대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때론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때론 불안하고 불길한 징조로 다가오는 그 실체에 소년은 당황하지만, 이는 이미 자신이 사고를 당하기 전부터 겪고 있었던 문제라는 걸 부모와 마을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된다. 더욱이 그런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환영받는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며, 불편한 과거와 두려운 환영의 공존은 감수성 예민한 소년의 심리와 정체성을 마구 짓밟고 헝크러트린다.
     
    새로운 삶과 환경에 적응해가며 소년은 자신이 그렇게 집착했던 과거 사건에 다시 발을 디디게 되고, 파편적으로 분절된 조각들을 단서로 재구성해가며 이 마을 속 숨겨진 추악한 진실 속으로 향한다. 그 속에는 지저분한 노숙자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크로와 말 한마디 못하며 도망치던 어린 소년 먹, 그리고 마을 내 누구에게나 신뢰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괴짜 신부, 서슴없이 자신의 편이 되어준 또래 소녀 베스, 그리고 적의와 경멸, 분노 등이 뒤얽힌 기묘한 마을사람 하나 하나의 생생한 소개가 덧붙여지며 생동감을 더한다. 과연 이 마을에선 어떠한 일이 있었고, 자신은 왜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 걸까. 자신에게 보이는 소녀의 환영은 무얼 말하고 있는지 양파 껍질 까듯 계속해서 생기는 의문과 호기심은 마지막 결론부에 도달해서야 밝혀지게 된다.

    [리버보이]와 [스타시커] 등 청소년 문학으로 유명한 영국의 팀 보울러는 자신의 장기인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를 부각시키는 한편, 이뿐만 아니라 스릴러, 추리, 판타지와의 조우를 통해 독특한 장편을 완성해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한 부분을 극대화시키는 건 철저히 주인공에게 맞춰진 시점과 주관적인 서술이다. 소년이 느끼는 환상과 갇혀있는 듯 상황을 그대로 담아둔 채 담담하게 그려낸 묘사는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사건의 일면을 감춰둔 채 진행시키는 극적인 효과가 있다. 때론 답답하고 제약이 여러모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생기는 스릴과 서스펜스는 상당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덕택(?)에 끝까지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강한 추진력을 가졌지만, 주인공이 직접 그 영적인 능력을 발휘해 사건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말은 조금 아쉽다. 어중간한 능력치였다고나 할까.
     
    소년의 능력치가 처음 발현된 프리퀄이나 이후 자신과 같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먹과의 이야기를 다룬 후속편이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래도 이 [블러드 차일드] 한 편에 담기에는 너무 많은 인물들의 설정이 낭비된 것 같아 아쉽다. 혼령이나 사건의 전말을 파편적으로 볼 수 있는 소년의 이야기는 기억상실이라는 설정말고도 더 쉽고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고. 굳건히 자신의 믿음을 지켜나가는 주인공 소년에 비해 어딘가 병풍처럼 당황하고 놀라기만 하는 부모나 의료진, 마을사람들에 대한 일차원적인 묘사도 안타깝다. 미스터리와 플롯에 집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그런 복합적인 관계가 너무 허술하고 안이하게 그려진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급행열차 같은 질주감과 환상적이고 기묘한 허상과의 조우를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풀어낸 건 확실히 팀 보울러라는 이름이 가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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