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Raymond & Maria의 'Jobs Where They Don't Know Our Names'
    책|만화|음악 2011. 8. 4. 04:38

    스웨디쉬팝 20년설 주기를 믿는가? 70년대 Abba가 나왔고, 90년대 Ace of Base가 있었다. 그리고 2010년대에 Raynond & Maria가 등장했다. 못 들어봤다고? 생소하다고? 괜찮다. 이제라도 익숙해질지 모른다. 그들은 아바나 에이스 오브 베이스처럼 자국시장을 잠재우고,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휩쓸고, 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 제임스 이하의 프로듀싱을 뒷바탕으로 세계공략에 나섰다. 전세계 최초 한국 발매라는 수식어가 조금 낯설고 겸연쩍지만 이들 실력에 비해 절대 과하다거나 오버라고 생각친 않는다. 되려 음악을 다 듣고 처음부터 다시 들을 땐 다소 뿌뜻함마저 느낄지 모른다. 레이몬드 앤 마리아는 강렬하고 큰 충격파를 던지는 슈퍼 헤비급의 밴드 파워를 갖추진 않았지만, 자동차 싸브보다 더 잘 팔렸던 자국 선배들 음악처럼 쉽고 친근하게 다가와 뇌 속의 가려움마냥 뱅뱅 맴돌며 따라부르게 만드는 매력을 갖췄다. 그리고 그 속에 갖춘 날카로움까지 직시한다면 이 그룹의 진가를 찬미하며 열광하게 될 것이다.
     
    듀엣 이름처럼 들리는 '레이몬드 앤 마리아'라는 밴드명이 사실 스톡홀름의 오래된 섹스 클럽에서 따웠다고 하는 걸 알게 되면 이들의 짖궂음과 시니컬함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마냥 사랑스럽고 달달한 멜로디에, 활력 넘치는 연주가 곁들어진 업비트 음악 속에 그 흔한 사랑이나 이별타령 대신 꽤나 사회파스러운 가사들과 정치적이고 올곧은 의식들을 담아낸 그들의 반골 기질도 그래서 생소하고 낯설기보단 더 편안하고 기분 좋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메시지라는 건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받아들이는 기분이 담겨있는 만큼 그들은 유려하고 친숙한 화음과 조화를 통해 무당파의 태극권보다 더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진실의 힘을, 음악으로 사회를 일갈하는 감동을, 그리고 눈물과 가쁨을 갖추게 되었다. 그것이 그들을 아바나 에이스 오브 베이스와는 다른 방향성을 투영하고 입체적인 존재감을 부여하는 것 같다. 소소하고 담백하지만 절대 싱겁지는 않은, 진정성의 남녀혼성 5인조 스웨디쉬 팝밴드다.

    기타의 섬세한 포크적인 터치로 시작하는 첫 곡 'The Fish Are Swimming Slower Every Year'는 가녀리면서도 울림을 던지는 보컬의 역량이 눈에 띄는 노래다. 경쾌한 나나나-의 허밍도 업비트의 리듬과 어우러지며 삶에 대한 진실한 가치를 묻는 가사의 무거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게 한다. 같이 박수를 치며 리듬을 타게 하는 'No One Notices Your Brand New T-Shirt' 역시 첫 곡을 잇는 경쾌한 포크락. 적절한 스트링과 편안한 비트감의 조화가 이 곡이 왜 큰 히트를 기록했는지 쉽게 이해하게 만든다. 애절한 바이올린이 브릿지로 등장하며 세련된 집시의 기운을 풍기는 'It Could Have Been You'는 변칙적이지만 파워풀한 업비트와 긍정적인 가사로 인상적인 뉘앙스를 한가득 선사한다. 그 뒤를 잇는 'Jobs Where They Don't Know Our Names'은 그들의 최고 히트곡이었던 두 번째 트랙과 비슷한 스타일의 경쾌한 포크락이다. 클랩 비트와 신명나는 라라라- 허밍이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데, 가사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그 박수와 율동을 당장 멈추게 될지 모른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호소가 정말이게도 멋지게 드러난 노래다.
     
    제임스 이하가 직접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이 잔잔한 'Remember Me'는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일소하는 러브송으로, 소박하지만 그리움과 간절함이 담긴 가사와 허탈한 듯 힘 빼고 부르는 창법이 되려 호소력있게 다가온다. 기타의 질감과 보컬의 싱그러움이 제일 살아 숨쉬는 'Don't Say When You Leave' 역시 사랑에 대한 진실을 토로하는 노래로, 경쾌한 포크락의 외피를 쓴 채 쓰디쓴 독처럼 다가오는 아픔을 고양이 발톱처럼 감춰두었다. 마냥 그 사랑스런 멜로디의 허밍을 장미처럼 감상하기엔 그 가시같은 가사에 찔릴 수도 있는 비터스윗송이다. 기타 대신 피아노가 전면에 나서는 'Nora Wellington Jones'는 심플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가사만큼이나 우직한 힘을 느낄 수 있는 노래. 뒤로 살짝 빠진 기타와 제임스 이하의 백보컬, 베이스 앤 드럼의 매력을 살짝 살짝 엿볼 수 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시선을 주장하는 'No'는 그 신념을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락킹한 드럼과 대중적인 멜로디라인으로 중무장했다. 중반 모든 악기를 스톱하고 이펙트 걸린 사운드만 흐르다 스트링 편곡이 터져나오는 후반부는 가히 이 앨범의 백미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달달한 트위팝스러운 'Come To Me'는 그들 노래들 중 가장 외형적인 모습과 내용이 내선일치하는 곡으로, 약동하는 드럼과 쫄깃한 기타, 안정적인 베이스가 어우러져 경쾌한 로큰롤을 선보인다. 마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녀에게 달려가야 할 것처럼 만드는 Come to me는 진정 마법의 주문이다. 기타 한 대로 아버지의 삶의 반추하고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비교하는 'My Father'는 진솔한 모습이 담긴 포크송. 잔잔한 울림 속에 비치는 삶의 일면이 어쿠스틱이라는 악기 본연의 모습과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편안한 보컬과 진심이 담긴 연주가 만들어내는 인생이란?에 해당하는 질문. 레이몬드 앤 마리아의 엔딩곡으로 손색없다. 이 뒤에 자리 잡은 두 곡은 한국 앨범에만 실린 보너스 트랙. 여전히 달달하기 그지없는 경쾌발랄한 색채감의 러브송 'They Love You'과 그들의 내츄럴 본 시니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포크락 'Like'다. 두 곡 다 레이몬드 앤 마리아스러운 전형적인 넘버로 본편에 이은 앵콜곡으로 아주 적절하게 느껴진다.
     
    포크라는 성향 때문에 스웨덴 밴드 레이몬드 앤 마리아가 범대중적인 장르 댄스에 가까웠던 아바나 에이스 오브 베이스만큼의 폭풍적인 인기를 기록할 수 있을지 사실 미지수다. 스웨디쉬팝 20년 주기설도 뻥이고. 하지만 그들이 담아낸 진짜 메시지와 삶에 대한 강력한 주제의식 만큼은 새마을 운동보다 건전하고, 후쿠시마 원전폭발보다 강력하기에, 그 사회진취적이고 희망찬 냉소의 기운이 무럭무럭 자라 전세계적으로 퍼졌으면 싶은 게 작은 바램이다. 그들의 공정하고 따뜻한 가슴만이라도 공유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