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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eet Foxes의 'Helplessness Blues'
    책|만화|음악 2011. 6. 28. 03:30

    빈티지 느낌의 LP 슬리브 패키지. 그들의 음악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시애틀 출신의 아티스트 토비 리보위츠와 크리스 앨더슨의 예술적인 커버 아트웍. 그리고 포크락. 플릿 폭시스의 두 번째 앨범 '무기력 블루스'는 철저히 복고지향적이다. 음악 장르서부터 멤버들의 외적인 모습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올드한 컨셉을 관통하는 그들의 나이대는 무려 86년생들. 그 사실을 알자마자 말도 안돼! 라는 믿을 수 없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건 뭐 완전히 6-70년대 히피들의 문화를 겪어보고 우드스탁 무대에 올라 러브 앤 피스를 열 두 번쯤 외쳤던 노장 그룹인 줄 알았더니만, 멤버 전원이 서른도 안된, 앨범 단 1장 발표한 신생 그룹이었다고?! 어디서 타임머신을 얻어타고 포크의 전설들이 써놓은 곡들의 악보를 훔쳐 갖고 온 양 태연스럽게 이렇게 연륜과 스타일이 곰삭은 음악들을 들려주다니 정말로 믿을 수 없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센스 정도 될까. 아무튼 놀랄만한 재능을 들고 플릿 폭시스가 돌아왔다.
     
    기존의 5인조에서 6인조로 재편한 플릿 폭시스는 포크를 기본 바탕으로 가스펠과 컨트리, 싸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와 올드한 스타일이 중첩된 매력적인 사운드를 구사하고 있다. 맑고 청아하며,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음, 악기 편성을 보이지만 가사에서 드러나는 일말의 불안감과 어두운 그림자는 그들 음악 곳곳에 스산하고 씁쓸한 뒷맛도 남긴다. 특히나 리버브가 잔뜩 걸려 몽환적이고도 장엄한 느낌을 선사하는 레코딩이나 멤버 전원이 코러스에 참여해 다양한 보이스의 극대화는 복고지향적인 스타일 이상의 특별한 기운과 아련한 잔상을 남기게 만든다. 실체하지 않는 공간감을 귀로 통해 가상으로 만들고 느끼며 그 곳에 있는 듯한 체험감을 안기는 사운드랄까. 젊은 음악인들 답지 않은 노련하고 고결한 카리스마가 담겨있다. 포크는 고루할 것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듯 아름다운 멜로디와 다이나믹한 에너지들이 가득 찬 그들의 신보는 자신들이 지칭한 '바로크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색다른 질감의 기시감을 펼쳐보인다.

    밀물과 썰물이 일듯 찰랑대는 기타의 트레몰로로 시작하는 'Montezuma'는 경건하고 환상적인 코러스가 덧입혀지며 잔잔한 울림이 배가된다. 로빈 펙놀드의 기름기 쫙 뺀 편안한 보컬도 매력적이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줄기마냥 청량하고도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간주는 목가적인 포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안겨주는 곡이다. 그 뒤를 잇는 'Bedouin Dress' 역시 복고지향적인 포크 사운드의 색채감을 테크니컬라로 재현하는 느낌의 노래로 아이리쉬 느낌 물씬 풍기는 피들의 첨가가 더욱 더 목가적인 경건함과 흥겨움을 고조시킨다.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과 수수한 코러스의 조화는 판타스틱 그 자체. 나긋나긋한 어쿠스틱 기타의 단촐한 진행으로 도입부를 여는 'Sim Sala Bim'는 곧이어 힘있는 합주가 합쳐지며 서정적인 트랙을 변화시킨다. 공허한 듯 스산하게 울려퍼지는 보컬이 떨림이 파워풀한 기타 스트로크로 치환되며 폭발적인 잼세션을 펼쳐보이는데 아주 명징한 쾌감을 안기며 마무리된다. 강렬한 피아노를 전면에 내세워 쉬크하고 우울한 가사와 상반된 뉘앙스를 안기는 'Battery Kinzie'는 극적인 고조감을 갖춘 위엄있는 사운드로 듣는 이를 매료시킨다. 비관적이고도 부정적인 가사를 힘껏 날려버리듯.
     
    두 개의 트랙을 연이어 붙인 것 같은 실험적인 트랙 'The Plains/Bitter Dancer'는 기타와 퍼쿠션이 주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몽환적으로 어우러지는 코러스가 아주 장관인 전반부와 포크의 서정적인 매력을 풍성하게 살린 후반부가 아름답게 결합돼 있다. 보이스가 가지지 못한 디테일한 매력을 플루트가 매꿔주며 6분에 이르는 대장정의 막은 아름다운 코러스의 조화로 끝맺는다. 본 앨범의 타이틀 곡인 'Helplessness Blues'는 포크는 기타의 음악이라는 걸 다시금 확실하게 증명하는 노래다. 낭송하듯 읊조리는 보컬과 낭창낭창한 기타 사운드가 어우러지며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이 곡은 인공적인 기계음에 지쳐있던 귓속을 씻어내듯 정화돼 다가온다. 기타의 섬세한 떨림이 이처럼 아름다웠나 복기해주는 천상의 소리. 그 뒤를 잇는 'The Cascades'는 2분이 갓 넘는 짧은 연주곡. 마치 어느 쓸쓸한 대황야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과 처연한 심정이 현란한 트레몰로 속에 넘실거린다. 왈츠풍의 기조로 화사한 분위기를 안기는 'Lorelai'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풍성한 화음이 일품인 노래다. 리버브가 만들어낸 몽환적인 진폭의 사운드가 정말 매력적이다. 심플하지만 노련하게 풀어낸 구조도 인상적이고, 모든 악기가 적재적소에 배치돼 풍성하게 만들어낸 사운드나 엠비언트가 어우러진 엔딩도 인상적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이뤄진 'Someone You'd Admire'는 기교 하나없이 수수하지만, 어느 노래들보다 더 풍성한 울림과 진정성을 지녔다. 노래 안에 담긴 영롱한 분위기가 헤드폰을 타고 넘어와 청신경을 건드렸을 때 숲속에서 청아한 공기를 들이마시듯 시원했다. 앞선 The Plains/Bitter Dancer처럼 두 트랙이 붙여진 것처럼 구성된 'The Shrine / An Argument'는 8분에 이르는 대곡으로 그들의 야심과 실험성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트랙. 전반부는 고요함 속의 긴장을 담은 듯 폭풍우 전야 같은 서정적이면서도 거친 기운을 드러낸다. 다채로운 악기 구성으로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달아 고조감을 키우는 순간, 정적이 찾아오며 스트링, 피아노, 경건한 보이스가 만들어내는 청아함은 이내 프리 재즈의 기운이 서린 섹소폰이 불협화음이 첨가되며 지금까지 만들어온 분위기를 전복하며 거대한 임팩트를 던진다. 와우! 다시 소박한 포크 사운드로 복귀하는 'Blue Spotted Tail'은 앞서 잔뜩 깔아두었던 리버브마저 제거해 현실적인 질감의 분위기를 선사한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마치 꿈이었다는 듯 깨어나 처음 마주한 현실에 초라해지고 안심하는 느낌처럼 담백하고 외로운 곡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Grown Ocean'는 그들 자신이 지칭한 바로크팝이라는 기조에 걸맞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LSD를 들이킨 듯 6-70년대의 고색창연 사운드를 재현한 이 노래는 싱그러운 노스탤지어의 총합이라 명하고 싶을 정도다. 이처럼 아름답고도 황홀하며 불안한 복고의 매력이 또 어디있을까.
     
    플릿 폭시스는 단순한 과거 스타일을 가져와 현재에 내다팔며 그룹을 상업적으로 연명해가는 타임머신 그룹이 아니다. 스타일과 장르를 넘어 복합적으로 재현하고, 자신들의 넘치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첨가해 색다른 변형과 발전을 이끌어내려는 도전정신의 젊은 그룹이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환상적인 협업 플레이, 그리고 자신들만의 고집과 스타일을 갖춘 채 오히려 내일을 향해 타임 리프할 그들의 실력과 배짱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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