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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rban Zakapa의 '01'
    책|만화|음악 2011. 6. 1. 15:44

    플럭서스 뮤직은 그 모태가 되는 어원 만큼이나 다양한 시선과 실험성, 도전 정신을 잊지 않는다. 러브홀릭이나 클래지콰이, W & Whale과 이승열, 박기영과 윈터플레이 등 소속된 아티스트의 면면만 봐도 벌써부터 호락호락 대중성에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가수들의 향찬이다. 그렇다고 예술이라는 독단 속에 갇힌 인디씬의 영역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고, 메인 스트림으로서 고유한 색채와 독특한 아우라를 갖는데 성공한 레이블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런 기틀을 마련해서 그런지 작년부터 이들이 야심차게 영입한 영건들도 그 방향성을 곧잘 쫓아가고 있다. 2006년에 결성됐지만 작년에 이르서 정규 1집을 내며 첫발을 내딛었던 '안녕 바다'처럼 '어반 자카파' 역시 2009년 선보인 2장의 EP 앨범 이후 약 1년간의 작업 끝에 이렇게 정규 1집 '01'을 내놓았다. 초창기 연주팀까지 포함해 9명의 인원이 4명으로, 그리고 다시 3명으로 재편되며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서두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음악을 위해 묵묵히 달려온 그들의 노력과 인내는 마침내 아름다운, 그리고 멋진 꽃을 피웠다고 생각한다.
     
    아이돌이다 나가수다 이리저리 치여 요즘은 꽤나 살아남기 힘든 음악 환경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한 어반 자카파는 R&B와 소울을 기본 베이스로 삼은 팀. 과거와 달리 다소 주춤한 인기의 장르이긴 하지만, 어쿠스틱한 편곡과 세련된 음색으로 귀를 사로잡는다. 더욱 놀라운 건 20대 초반의 멤버들이 전곡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참여해 이처럼 꽉 잡힌 통일성과 안정감의 앨범을 완성해냈다는 것이다. 빈 말이 아니라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브라운 톤의 커피향을 물씬 내뿜으며 사랑과 이별에 대해 노래하는 이들의 노래는 음악적으로나 감성적으로 고심한 흔적들이 보인다. 아름다운 가성을 소유했으며 투명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선사하는 권순일과 비음 섞인 소울 창법이 매력적인 박용인, 그리고 홍일점이면서도 플럭서스형 여자 보컬 스타일이라고 할까 탁성이면서도 파워풀한 감성을 폭발시킬 수 있는 조현아의 목소리는 서로 묘한 조화를 이루며 팀웍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총 15곡의 노래를 빽빽하게 싣고 있는데, 그 중 '커피를 마시고'와 'Inevitability', 'Love is all around'는 첫 번째 미니 앨범에 실렸던 곡이고, 'Crush'는 두 번째 미니 앨범에 실렸던 곡을 새로 연주한 곡이다. 인터루드로 삽입된 짧은 연주곡 2곡을 제외하면 정규 앨범의 신곡은 9곡인 셈.

    현재 음원 차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타이틀곡 '그날의 우리'는 어반 자카파라는 팀의 색깔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R&B다. 가성과 비성, 탁성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소울의 교집합은 아름답다는 말 외에 불필요하다. 예전 멤버이자 여전히 정규앨범에서도 자잘하게 손을 보태고 있는 최재만이 합류한 '커피를 마시고'는 그들을 널리 알렸던 가장 유명한 곡으로 단촐한 구성임에도 좋은 멜로디와 보컬이 만들어낸 화음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입증해낸다. 보사노바의 향기가 넘실대는 '나비'는 나른하면서도 탐미적인 색채로 유혹하고, 그루브하고 재지한 색채를 가진 'Crush'는 달달하니 호소력 넘치게 다가온다. 브라스섹션이 참여해 소울 충만한 기운을 물씬 풍기는 다소 어려운 제목의 'Inevitability'는 권순일과 조현아의 듀엣곡. 강약의 바이브가 빛을 발하는 협연이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별의 건너다'는 스탠다드 R&B 발라드. 세 사람의 조화도 조화지만 드라마틱한 구조와 편곡의 힘이 멋진 멜로디와 잘 맞물린, 음악의 서사가 뭔지 보여주는 노래다. 평화로운 어딘가를 달리는 자전거와 소리와 함께 짧게 피아노 소품 'Rainbow Ride'가 펼쳐지면 그 이후 3곡은 멤버들 간의 솔로 (자작곡인 동시에)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어쿠스틱한 기타 연주에 영어 가사로 된 권순일의 R&B 'Always Be Mine'는 그의 미성이 도드러지는 노래. 인터플레이의 이주한이 피쳐링한 빅용인의 '그냥 그렇게'는 우수 어린 소울 풍의 곡으로 씁쓸한 감성이 앙금처럼 짙게 남는다. 전재덕이 하모니카로 힘을 실어준 조현아의 '어색한 로맨스'는 제목만큼이나 통통 튀고 설레는 감성을 담아낸 노래. 정인스러우면서도 혜원같기도 한 보이스와 스캣이 참 인상적이다. 드라이빙 뮤직으로 손색이 없는 보사노바 스타일의 'Driving To You'이 이어지면 그 뒤로 브라스섹션이 감미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발라드 'Love is all around'가 흘러나온다. 다소 심심했던 싱글 커트에 비해 모던하고 달달한 편곡이 곡의 느낌을 더 살렸다. 보컬들의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진 곡으로 보이스 컬러에서 오는 서로 다른 느낌들이 만들어낸 하모니가 노래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절제된 폭발을 담아낸 감성이 일품인 '우리 처음 만난 날'은 모노 톤의 발라드. 긴장감이 느껴지는 편곡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하는 짧은 연주곡 '흩날리다'가 분위기를 띄우면 피아노로만 단촐하니 연주된 '봄을 그리다'가 대단원을 장식한다. 빈 여백을 가득 채우는 세 보컬의 파워풀한 노래는 끝나도 계속 귓가에 울린다.

    플럭서스 뮤직의 힘은 능력있는 신인을 발탁하는데 있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롤모델과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색깔있는 선배가 있고, 그들을 지지해주는 강력한 팬덤이 있는 동시에, 초심으로 갈 수 있게 잡아주는 레이블의 파워가 있다는 게 더 크다. 어반 자카파는 그 속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패를 모두 공개했다. 그리고 그건 신인들의 멋과 만용이 아닌 미덕과 패기로 느껴진다. 실력과 재능을 겸비한 그들의 정규 앨범은 올 봄 가장 멋진 도전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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