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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약.
    잡담 2008. 12. 21. 23:59

    지독하게 싫었다. 어린이용 물약이. 쓰디쓴 약제를 그나마 달게 하겠다고 만든 그 인위적인 달콤함은 내가 알던 단 맛이 아니었다. 소름끼치는 단 맛, 진저리 처지는 단 맛, 달달함으로 가장한 고통의 맛이었다. 차라히 쓴 걸 먹고 단 사탕을 입에 무는 게 낫지, 이런 엉성한 단 맛으로 날 현혹시려는 어른들의 작은 배려가, 혹은 그 짧은 머릿속이 괘씸했던 것 같다. 그 어린 시절에도 달콤함의 종류에 대해 깨우쳤나 보다. '비터스윗(bittersweet)'이라는 중의적인 표현까지 5살 내 어린 머리 속에 깨우치게 만든 그 물약이 증오스러웠다.
     
    그렇게 죽고 못먹었던 물약이 이젠 꽤나 달달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그 기분 나쁘게 못미더운 인공적인 단맛이 걸리긴 하지만, 어린 시절 느꼈던 배신감과 구토증까지는 아니다. 아 이런 맛이었구나 혀를 굴리며 년도와 산지를 맞추는 포도주 시식가들의 표정을 담고서 음미한다고나 할까. 역시나 물약은 어른들의 맛이었나 보다. 살면서 맛본 그 어떤 재료들에 비한다면 인내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사는 맛을 알아간다는 게, 물약이란 게 토할 정도가 아니었구나를 느낄 때,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관대함이 드는 동시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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