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
유성우.잡담 2009. 11. 18. 22:49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좀처럼 보기 힘든 우주쇼가 펼쳐진다 해서 잠깐이라도 졸면 얼어죽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옥상에서 서성였다. 옷깃을 여매고,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추위는 가실 줄 모르고, 몸은 점점 얼어만 가는데 밤하늘에선 개미 새끼 하나 떨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찐빵 기계에서 흘러나오듯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입김 속에 욕이 반쯤 섞이기 시작할 무렵, 내가 생각한 동남쪽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번쩍이는 무언가! 생각하고 자시고 할 거 없이 본능적으로 소원 리스트를 줄줄 읊어댔다. 이루어져라. 이루어져라. 이루어져라. 그렇게 만난 올해 두번째 우주쇼. 감기에 동상 보너스를 감수하고 건진 단 한장의 사진. 누르면 유성우의 한줄기 흔적을 1200 사이즈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
여름 안에서.잡담 2009. 8. 9. 14:07
1년만에 하는 방청소. 쓰레기통이 되어가기 직전의 상황이여서 아무래도 주인의 사명으로 구제해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모든 문을 열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으며, 굵은 땀방울을 흘려대며 하나 둘 정리를 시작했는데, 이건 뭐 끝이 안보인다. 반나절이 지난 지금 이 뜨거운 날씨 속에서 늙은 개가 맞이한 복날의 기운처럼 헉헉거리고 있는데, 청소는 이미 안드로메다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한없이 푸른 바다만이 머리 속에 아른거린다.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있어. 그리고 내 곁에는 니가 있어. 환한 미소에 함께 서 있는 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체리 코크를 마시며, 옥상의 열기를 만끽하며, 난 여름 안에서 이렇게 갇혀있다. 날씨 좋다 하며.
-
피트 닥터, 밥 피터슨의 '업'영화|애니|TV 2009. 8. 4. 23:58
픽사(pixar)의 [업]이 아니라, 픽사가 바로 '업'이다. 놀랄만한 기술적 완성도와 뛰어난 스토리텔링, 그리고 환상적인 유머에 대해 극찬할 시기는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났다. 그들은 몇년간 최고였고, 지금도 최고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업'은 주인공 칼이 바라는 마지막 삶의 목표이자 희망인 동시에, 픽사의 자신감의 발로이자 힘이며, 목표 지향점을 한번에 담은 제목인 셈이다. 계속 두둥실 위로 올라가기만 할 것 같은 알록달록 풍선의 행보처럼. 하지만 [업]에선 [붉은 돼지]처럼 순수하게(어쩌면 노골적으로) 하늘에 대한 로망이 표출되진 않는다. 중요한 건 모험 그 자체가 아니라 모험 속에서 깨닫게 되는 - 자신 일생을 관통하는 테마이기 때문에. 하늘과 난다는 건 그 되새김을 위한 단순한 배경과 행위일..
-
하늘 벽지.잡담 2009. 1. 9. 00:58
하늘 벽지를 바르고 싶었다. 온통 새파란 맑은 하늘에 문득 문득 그려진 흰구름이 잘 어울리는 걸로. 잘 때도 하늘을 보고, 깰 때도 하늘을 볼 수 있는 그런 시원스런 방이 갖고 싶었다. 여름엔 바람 소리가 들리고, 겨울엔 다소 시린 듯한 기운이 드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밤에 조용히 불 끄고 플라네타리움을 켜면 얼마나 멋진 밤하늘을 가질 수 있을까. 별자리 하나 둘 살펴보다 잠들면 어느새 불면증도 가시지 않을까. 야외인 듯 실내인 척 하는 묘한 경계가 끌렸다. 그런 방 안엔 언제나 나만의 비행기가 날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