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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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 쇼헤이의 '작은 오빠'영화|애니|TV 2009. 11. 20. 23:50
특유의 시니컬한 블랙 유머와 냉철하기 그지없는 사회인류학적인 시선을 잠시 거둬둔 채 따스한 감성으로 그 때 그 시절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네오 리얼리즘 색채의 영화. 이마무라 쇼헤이의 초기작으로 강렬한 화두와 주제 의식없이도 보는 이를 잡아당기는 은은한 마력이 일품이다. 그건 마치 예전의 [육남매] 드라마를 보듯 아릿한 기시감의 향수와 흰 쌀밥만 먹어도 배불렀던 과거의 진지하면서도 가슴 아픈 사연의 진솔함이 구김살없이 담담하게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 담긴 시대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에서도 반복되며 곱씹을 가치에 대해 은연중에 드러내는데, 좋은 영화가 가진 힘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앞서 그의 다른 작품인 [여현]과 [도둑맞은 욕정]을 놓쳐 안타까웠는데, 별 기대하지 않았던 이번 상영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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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 쇼헤이의 '검은 비'영화|애니|TV 2009. 7. 13. 23:59
1989년엔 두 편의 '검은 비'란 영화가 만들어진다. 하나는 할리우드에서 '블랙 레인'으로, 다른 하난 일본에서 '구로이 아메'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지만, 검은 비가 상징하는 바는 똑같다. 일본이라는 전후 상황에 대한 특수성. 이마무라 쇼헤이는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무뚜뚝한 화법으로 그 심각하고 무서운 원폭 피해 가족들과 동네 이야기를 때론 코믹하면서도 때론 애잔하고, 때론 섬뜩하게 담아내고 있다. 강렬한 대비의 흑백 화면은 올드한 시대 상황을 커버해주는 동시에, 인물들의 비극적인 정서를 더 부각시키며, 클로즈 샷이 거의 없다시피한 영화의 넓은 앵글은 동선의 미학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영화로부터 거리를 둬 객관화된 시점을 계속 유지한다. [간장선생] 때도 그랬지만, 묵직하고 민감한 상황의 이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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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에이이치의 '13인의 자객'영화|애니|TV 2009. 2. 24. 04:51
소수가 다수와 싸워 이긴다는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았다. 위기와 시련 속에 더 크고 많고 강한 적들과 맞닥들이며, 미션 임파서블의 고개를 지나, 생사결의 문턱에서 해피 엔딩이라는 찬란한 햇빛을 맞이할 때의 쾌감과 희열은 주인공이나 관객이나 모두 일체화돼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농축액과 같다고나 할까. 일본 참바라 영화들은 사무라이와 막부 시대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이런 활극을 효과적으로 구사했다. 구도 에이이치는 구로사와 아키라와는 또 다른 결연하고 장중한 느낌으로 리얼리티에 입각해 인상 깊은 액션을 선보인다. 시네마스코프의 와이드한 화면에서 지미집이나 스태디캠도 없던 시절, 직접 들고 뛴 강렬한 핸드헬드로 담아낸 단내 나는 비주얼은 박진감 넘치고 생생하다. 몇 번의 칼질에도 쓰러지지 않고, 지칠 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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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타카시의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영화|애니|TV 2008. 7. 23. 23:52
'시네바캉스 서울' 사이에 껴있는 일본영화걸작 정기무료상영회에 다녀왔다. 상영작은 통통한 볼살에 카리스마가 작살인 시시도 조 주연의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 쌍팔년도 작명 센스답게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줄거리에, 간지 폭풍이 작열하는 후반부 액션 쾌감이 어우러진 오락 영화다. 60년대 B자 액션 영화들을 찍어내듯 양산해낸 닛카츠 영화사의 흥행작 중 하나. 인상적인 테마곡과 문학체적인 대사, 후까시 만빵의 폼생폼사 해결사 이야기가 아주 매력적이다. 스즈키 세이준처럼 자신의 낙인을 하나하나 새겨 명인이 된 감독이 있는가 하면, 노무라 타카시처럼 대중적인 필모를 쏟아내며 B급 오락 영화의 달인이 된 감독도 있으니, 어느 길이 더 낫다고 여길지는 모르는 일. 다만 닛카츠의 도래기와 쇠퇴기를 통해 B급 액션물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