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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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이 모이다.잡담 2011. 1. 26. 02:50
작년 한 해 영화 티켓. 귀찮아서 몇 장인지 세어보지 않았다. 티켓 모으는 취미는 따로 없었는데, 재작년부터 어느 정도 보나 싶어 모았더니 대략 평균적으로 이 두께가 나온다. 작년엔 팔 수술에 다리 부상까지 꽤 못돌아다닌 기간이 있었는데... 이게 내 극한치이자 평균치인가 싶다. 영상자료원 씨네마테크 이용이 압도적이고, 다른 티켓들은 고만고만하다. 엎어지면 코 닿을..거리는 아니지만 비교적 지척인 요인이 컸겠지 싶다. 서초동 시절엔 학교 숙제 아니면 콧배기도 안 비쳤던 터라. 흠흠. 집게를 다시 비웠다. 그리고 새 티켓을 집는다. 올해가 그렇게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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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영화|애니|TV 2010. 7. 7. 02:14
필름으로 보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조그마한 화면에 조악한 리핑 화질로만 보던 것과는 가히 천지차이였다. 이만큼 깨끗한 화질과 음질을 자랑하는 해외 프린트는 처음 본다는 노가미 여사의 찬탄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내겐 필름 상영 그 자체가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미후네의 박력과 기개가 3D 입체영상 못지않게 생생하리만치 눈 앞에서 펼쳐졌고,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지만 더 생경하게 감동과 전율을 뿜어내는 영화의 깊이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내가 같은 영화를 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복원판 [라쇼몽]은 기가 막혔고, 와이드로 처음 본 [요짐보]는 눈물이 앞을 가렸으며, 그 색채와 스케일에 넋을 잃고 바라본 [란]은 아름다웠다. 207분간 엉덩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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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13인의 무사'영화|애니|TV 2010. 3. 15. 23:57
인해전술이란 이런거다를 작정하고 보여주는 영화. 밑도 끝도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적들의 향연은 그야말로 MMORPG 노가다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이 영화의 장관이자 백미다. 중국식 상상력과 스케일만이 가능한 대혈전으로 지금까지 보아온 장철 영화의 일당백 싸움 중 가장 압권이다. 게다가 다리 위에서 혼자 그 많은 적들을 상대하다 다리 위에서 꼿꼿이 죽는 적룡은 물론, 형들의 계략에 빠져 말들에 묶여 오체분시(五體分屍)가 되는 강대위의 충격적인 죽음은 영화의 내용을 잊게 할만큼 무시무시하고 처절하다. 내용은 다소 밋밋하고 평이하나 무시할 수 없는 몇몇 시퀀스들이 던져주는 시각적 쾌감은 가히 장철 영화답다. 구도 에이이치의 세밀하고 생생한 액션과는 다른, 남성빛 판타지를 전달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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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대자객'영화|애니|TV 2010. 3. 14. 22:01
그야말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엔딩을 가진 [대자객]은 왕우와 장철의 비극적이고 처절한 남아의 일생을 가장 적나라하게 다룬 작품이다. 다른 작품에서의 그는 그저 죽음을 앞에 두고 싸웠을 뿐 죽음이 오는 그 순간까지 생에 대한 집착을 걸고 결투에 임했으나, 여기선 아예 죽음과 함께 걷는다. 모든 걸 하나하나 정리하고 그 긴 기다림 끝에 자신의 약속과 목적을 이행하러 가는 순간 그는 이미 죽은 셈이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일당백과의 싸움은 타성적으로 나열되는데 그친다. 그리고 그건 한순간 모든 걸 뿜어내고 일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의 발버둥처럼 폭발적이나 허무하다. 하지만 그 몸짓 하나가 만들어낸 의미는 오래오래 살아남아 역사적으로나 영화적으로 많은 이들을 감명시켰다. 적나라한 고어로 대표되는 장철이 이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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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잔결'영화|애니|TV 2010. 2. 26. 18:52
데이빗 보드웰이 가장 좋아한 장철 영화라 했는데,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왕우의 비장미 넘치는 호방함이나 적룡과 강대위의 콤비 플레이가 빛나던 영화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무협 영화에서 중요한 건 빛나는 액션일터. 캐릭터들의 매력은 떨어지지만 독특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기예에 가까운 아크로바틱의 미학적 성취가 한데 어우러져 무협 영화의 재미를 극단으로 밀고 가는 가학적 쾌감이 가득하다. [잔결]은 [오독], [철기문]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장철의 후기작이며, 동시에 신체 훼손 및 파괴의 미학이 절정에 오른 화끈한 막가파 고어 무비다. 악당, 주인공 가릴 것 없이 모두 불구가 되어버리는 희대의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 핸디캡이 곧 능력이 되는 - 반대로 정상인들은 평범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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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철기문'영화|애니|TV 2010. 2. 26. 02:17
GV에서 오승욱 감독도 지적했지만, [철기문]이야말로 관통의 이미지가 가장 극단화돼서 나온 장철 영화다. 그동안 장철은 썰고, 베고, 찌르고, 자르고 온갖 폭력성을 시도했지만, 이 작품만큼 일관되게 관통하는 걸로 밀어붙인 작품도 드물다. 처음엔 젓가락이나 칼, 대나무로 시작해 마지막엔 깃발이 달린 장창이 배를 관통해 피칠갑이 된 깃발이 슬로우로 펼쳐질 땐 경탄의 신음까지 흘러나올 정도다. 그 처연한 아름다움이, 아찔한 공포가 한데 얽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을 준다. 극단적인 고통의 표현과 신체 훼손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生)에 대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의 강렬한 폭력 미학은 후반기 베놈스(Venoms)를 만나며 더욱 더 꽃을 피웠다. 개인적으론 그의 이런 후기작들이 좋다. 잔기교와 아크바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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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갱들'영화|애니|TV 2009. 12. 20. 15:2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쯤에 해당하는 [석양의 갱들]은 서부극을 빙자한 민중혁명극이다. 폭파전문가와 좀도둑이 만나 파트너쉽을 이루는 영화답게 레오네 영화에서 보기 힘든 스펙타클한 액션과 특유의 유머가 곁들어져 강한 재미의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그 와중에 틈틈히 등장하는 민중의 무고한 학살과 독재정부의 무능하고 야만적인 만행들의 교차다. 지식인의 허위허식과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핍박을 극명하게 대비하며 혁명을 완수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코믹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그 어떠한 맑시즘 서적보다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깨달음이랄까. 엉뚱한 좀도둑에서 혁명전사로 서서히 체화되는 로드 스타이거와 와방 카리스마 넘치는 제임스 코번의 연기도 좋고(리 마빈이나 제임스 코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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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영화|애니|TV 2009. 12. 18. 23:36
큰 스크린에 가득 차는 거친 마초들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두 눈 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 시선에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담긴다. 피곤과 짜증, 공포와 두려움, 삶에 대한 집착과 지겨움 그리고 호기심. 세르지오 레오네는 땀내나는 남자들이 활개치는 서부에서 고전의 낭만과 전설을 거세해버리고, 동물에 가까운 탐욕과 흉폭성, 생존본능을 찾았다. 명예와 영웅은 해질녘 뒤안길로 쓸쓸히 떠나보내고, 차거운 복수와 치열한 이권다툼만이 궁상스레 그 자리를 차지한다. 아름다운 풍광 속 황무지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서부의 주인공은 악당도 보안관도 총잡이도 아닌 창녀와 서부 개척의 인부들이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그들을 위한 아름다운 찬가이자 떠난 자들을 위한 씁쓸한 애가(哀歌)이고. 그렇게 새로 쓰여진 옛날 옛적 서부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