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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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츠키 히로유키의 '타력'책|만화|음악 2012. 8. 6. 20:21
타력이라니. 내가 생각한 그 뜻이 과연 맞을까. 처음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제목의 생경스러움과 의아함이었다. 초딩 시절부터 바른생활 시간에 스스로 알아서 척척척! 이란 생활 모티브를 구호처럼 되뇌던 학교 선생님 밑에서 수업을 주구장창 세뇌되다시피 받아오던 범생 출신인지라 아무래도 이런 정반대되는 주장이 이태리 타올 만큼이나 더 까끌까끌하게 다가왔다. 자력으로 씩씩하고 열심히 바리바리 살아도 모자랄 판에 남의 힘을 인지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참으로 수동적인 태도라니, 신선하고 독특하게 느껴지지만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혹시나 인생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노하우나 일상의 지혜라도 담아낸 실용서라면 좀 다르겠지 싶어 한두 장을 넘겨보니 그와 달리 불교적인 시각이 옅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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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책|만화|음악 2012. 7. 23. 03:31
하루키의 에세이를 처음 읽게 된 건 그의 소설이 모두 대출되고 없는 대학교 도서관 덕분이었다. 지금은 격하게 고맙게 여기고 있지만 당시 나는 그의 책을 읽기 위해 열이 올랐던 때라 야속하리만치 텅 빈 책장을 바라보는 게 꽤나 고역이었다. 같은 무라카미라도 류씨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대신 빌릴 걸 물색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게 바로 하루키의 에세이였는데, 딱 봐도 재미없을 것 같던 문학사상사 특유의 촌빨 날리는 표지에, 너덜너덜 다 떨어진 것 같은 책 상태, 거기에 다섯 살 먹은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안자이 씨의 유치찬란한 일러스트까지 결합돼 딱히 빌리고 싶단 마음은 들지 않았다. 편당 글이 짧은 것 같으니 그냥 한 번 들춰나 볼까 싶은 마음으로 가볍게 선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1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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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다 코우의 '동경산책'책|만화|음악 2008. 9. 19. 13:31
똑딱이 카메라 하나에, 책 한권 들고 훌쩍 지하철에 올라 근거리 수도권 여행(이라기 보다는 산책?)하길 좋아하는 나로서 미치다 코우의 산뜻하고 유쾌한 주절거림은 꽤나 반가웠다. 거창한 목적과 꽉 짜여진 일정에 맞춘 출발보단 기분에 따라 바뀌는 즉흥성과 작은 일탈이 맘에 들었다고나 할까. 현실을 작파하고 떠날 만큼 배포가 큰 것도 아니고, 또 그럴만한 자금적 여유와 부모님의 잔소리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딱 내겐 이 정도의 소소한 산책이 지긋지긋한 일상에 대해 내가 부릴 수 있는 객기와 만용이기에 종종 그렇게 서울 산책을 떠난다. 물론 미치다 코우는 나같은 이유에선 아니겠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잠깐이나마 거리를 두고 객관적이 돼 바라보며 실없는 농담을 지껄일 수 있는 작은 여유가 묻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