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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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책|만화|음악 2012. 7. 23. 03:31
하루키의 에세이를 처음 읽게 된 건 그의 소설이 모두 대출되고 없는 대학교 도서관 덕분이었다. 지금은 격하게 고맙게 여기고 있지만 당시 나는 그의 책을 읽기 위해 열이 올랐던 때라 야속하리만치 텅 빈 책장을 바라보는 게 꽤나 고역이었다. 같은 무라카미라도 류씨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대신 빌릴 걸 물색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게 바로 하루키의 에세이였는데, 딱 봐도 재미없을 것 같던 문학사상사 특유의 촌빨 날리는 표지에, 너덜너덜 다 떨어진 것 같은 책 상태, 거기에 다섯 살 먹은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안자이 씨의 유치찬란한 일러스트까지 결합돼 딱히 빌리고 싶단 마음은 들지 않았다. 편당 글이 짧은 것 같으니 그냥 한 번 들춰나 볼까 싶은 마음으로 가볍게 선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1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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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책|만화|음악 2008. 5. 6. 23:58
제목에서 오는 으스스한 포스와는 달리 전형적인 하루키 단편집이다. 다만 그보다 더 불가사의하고 기묘한 뉘앙스를 풍긴다고 하나. 공포 괴기와는 거리가 멀고 마치 '기묘한 이야기'나 '환상특급'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무난하고 가벼운 얘기들이 몽환적으로 소개되는 느낌이다. 전혀 있을 법하지 않지만, 어디선가 들어볼 것만 같은 일상의 우연성을 마구마구 뒤섞어 비논리적이고 부조리한 삶의 진실성을 드러내는 하루키의 필치는 담담하니 꾸밈이 없다. 인생은 그런 거라고. 정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가 중요한 거라고 말하는 듯 하다. 오랜만에 붙잡은 하루키의 글이 지겨운 일상에 식욕을 돋군다. 하루키는 좋은 에피타이저다. 일상 속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