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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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네 겐지의 '클릭 클릭! 클릭으로 세상을 바꾸다'책|만화|음악 2010. 12. 15. 19:52
유난히도 추운 겨울날. 졸업을 앞둔 많은 젊은이들은 취직의 온도를 실감하고 옷깃을 여미었을 거다. 몇 해 전부터 88만원 세대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쥔 이 시대의 기린아들은 꿈을 접은 채 현실에 안주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안위가 그 어떠한 대의명분보다 중요한 세상. 이념이 사라지자 그 빈 공간을 파고든 건 사랑도 평화도 희망도 아닌 지극히 냉랭한 사회의 경쟁이었다. 더 좋은 스펙을 찾아 움직이고, 더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노력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과 동지가 바뀌는, 이 모든 것이 112.4:1의 9급 공무원 고시같은 치열한 삶 속에서 꿈은 더 이상 멋지고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패기가 치기로, 열정이 무모함으로 인식되는 지금 꿈꾸는 자들의 반란은 거의 다 진압되었다. 남들처럼 가늘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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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영화|애니|TV 2010. 7. 21. 21:05
한낱 영화도 인간의 꿈에서 비롯된 부산물에 지나지 않으니,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라는 장르에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를 찾아 영원한 꿈꾸기에 여념이 없다. 데뷔작 [미행]에서부터 [메멘토], [프리스티지] 그리고 두 편의 21세기 영웅담 배트맨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그가 끊임없이 탐구하고 전력투구를 해온 건 강한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플롯팅의 재구성.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로 판타지를 직조해내는 기술(技術)이야말로 기술(記述)의 기술(奇術)이 있어야 가능한 일. 놀란은 스케일과 비주얼에 앞서 무엇보다 찬탄이 나오는 세팅과 가공, 절정의 지배력으로 보는 이를 압도해나간다. [인셉션]은 이미 그 동안 수차례 존재해왔던 호접몽 영화들에 대한 총집편이자, 프로이드에게 바치는 전도서이고, 놀란의 절정에 선 사고실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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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안 펀치 트렁크.잡담 2009. 8. 30. 23:59
여름이 끝나가는 무렵 알록달록 꽃무늬 반바지를 샀다. 비록 올해는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어여쁜 아가씨들의 뭇 시선을 끌며 차거운 도시 남자의 마력을 내뿜을 기회조차 없었지만, 언젠간 그럴 수 있겠지 아쉬움을 고이 접어 나빌레라 싶었다. 이국적인 따뜻한 남쪽 섬나라 모래사장에서 서핑하는 금발 미녀들을 바라보며 인생을 논하는 그런 나날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옥상 위 푸른 하늘 아래서 떠올렸다. 현실은 시궁창 같은 방구석. 하아. 기분이라도 내주는 내 빨간 하와이안 펀치 트렁크가 그저 고마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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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희망.잡담 2009. 7. 25. 17:58
맨땅에서 희망을 보고 싶다.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싱그러운 숨결을 내쉬는 꿈과 만나기란 쉽지 않겠지만, 잠깐 고인 물 속에 비치는 태양처럼 은은하고 부드러운 미래와는 마주칠 수 있을거라 빌어본다. 언제 어디서나 그 곁에서 머물겠다는 다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나란 녀석, 게으르긴 하지만 쉽게 지치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그 희망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마저 막을 순 없다. 변해가는 세상을 보며,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나며. 변절이 아닌 순응이라 이야기하고, 꿈보단 삶이라 나도 말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안 풀리는 문제는 찍을 수밖에 없는 거 같다. 근데 찍기 실력도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 이 구제할 수 없는 바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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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 핀치.잡담 2008. 12. 14. 23:32
몽상가로 살아온 지 어언 십여년,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핀치에 몰렸다. 계속 꿈만 꾸기엔 너무도 시끄러운 세상. 원래 이 쯔음의 나이가 갑오경장 만큼 변화가 몰아쳐 오는 시기라지만, 주위 경조사다 뭐다 복작복작한 이벤트의 연속에, 덤벼라 세상아!! 외치기엔 목도 마음도 많이 다쳤고 쑥쓰럽기에, 타협하고 알아서 맞춰 가겠다 자꾸만 약해져 간다. 현실은 빨리 잠에서 깨어나라 빨간 약을 내미는데, 도리도리 거부하기엔 그 달콤한 유혹이 너무도 크다. 사실 먹고 깨어난다 해도 그 치열한 최일선의 생업 전선에서 전투는 피할 길이 없다. 파란 알약 속 매트리스 세상에서도 찌든 세파에 나른해지는데.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선택도 망설임도 한낱 고뇌의 짐일뿐 어느 것이 옳은 길인가 혜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 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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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비몽'영화|애니|TV 2008. 10. 14. 22:34
내가 꾸는 꿈이 다른 사람의 현실이라면. 내 행복이 다른 사람의 불행이라면. 완벽한 거울상 대칭에 서있는 남녀의 소통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비몽'은 전형적인 김기덕 영화다.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모호하고 몽환적인 동양철학과 삶에 대해 말하는 그는 여전히 구원과 파멸을 찾는다. 꿈이란 허구를 통해 현실을 비추고, 사랑으로(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로) 소통을 그리는 형식적인 실험은 '영화는 영화다'와도 닮았다. 너무도 뻔한 나비의 호접지몽과 조금 순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끔찍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자해, 그리고 다양한 상징과 암시, 함축적인 메타포를 깔아놓은 한국적이면서도 공감각적인 이미지들은 김기덕 월드의 익숙한 키워드. 가끔은 동어반복스럽다 싶지만서도 점점 더 세련되어지고 대중화되고 있는 그의 발전성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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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구나.잡담 2008. 2. 3. 23:09
고등학교 교실. 시험시간. OMR 카드에 열심히 마킹하고 있는데, 종이 울린다. 뒤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하는 녀석들. 급한 마음에 마킹은 실수로 이어지고, 땀은 비오듯 흘러 내린다. 일생일대 이런 적 한번도 없었는데. 다그치는 감독관 선생님께 사정사정해서 마킹을 다시 하는데, 제대로 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기다려 줄 수 없다며 매정하게 OMR 카드를 낚아채는 선생님. 으악. 이번 교시는 완전히 망쳤다.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 부모님께 뭐라 그런다?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졸업한지도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런 악몽에 시달리다니. 솔까말 요새 내가 정줄놓 상태인듯. 흠좀무... -_- 심신이 고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