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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쿠마루 가쿠의 '악당'
    책|만화|음악 2016. 9. 23. 03:16

    무엇보다 제목이 맘에 들었다. [악당]. 강렬하고 효과적이며 심플하면서도 명료하게 다가온다. 이보다 더 쉽고 간략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순 없을 것이다. 야쿠마루 가쿠의 새 소설 [악당]은 제목 그대로 악당에 대한 얘기다. 하지만 악당이 그 흔한 주인공이 아니고, 악당이 참 뻔한 나쁜 놈도 아니다. 이 소설에서 악당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이다. 내 친구일수도 있고, 내 이웃일수도 있고, 내 핏줄일수도 있다. 그들은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대놓고 세계정복을 노리거나, 정의를 파괴하기 위해 힘쓰지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 찾아온 욕망에 방향을 잃고 실수를 저지른, 평범한 사람들이다. 혹은 그렇게 삐뚫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야쿠마루 가쿠는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잘 파고드는 작가다. 소년범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던 데뷔작 [천사의 나이프]부터, 불법적인 범죄 모의에 가담하게 되는 [하드럭]이나, 정신감정을 통해 살인죄에서 벗어나는 [허몽],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감을 다루고 있는 이번 [악당]도 모두 통쾌한 정의 실현과 공정한 법의 구현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의 빈 틈과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화두를 던지고 일순간 고심하게 만든다. 이 사회가 과연 옳은 걸까. 내가 생각한 것이 맞는 건가. 정의는 과연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불편하고 답답한 문제들을 건드리며 독자들을 괴롭힌다. 아니, 잠깐 잊고 있던 현실을 다시 똑바로 바라보라고 가리킨다. 쓰리고 아픈 사회의 통증이 스멀스멀 덮친다.

    범죄가 휩쓸고 지나간 간 사람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 가해자는 과연 모든 죄를 참회하고 여전히 잘못을 빌며 살고 있을까. 그 피해자들은 시련을 극복하고 새 인생을 부여 받았을까. 그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가족들은, 친구나 동료, 이웃들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악당]은 어떤 하나의 사건보다는 그 사건 이후의 일들에 대해 주목하고 관찰해간다. 때론 먹먹하고, 때론 쓴웃음도 짓고, 때론 주먹마저 쥐게 만들 만큼 분노도 생기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 같던 후일담에 대해 짧게 다루며 사회에 내제되고 만연한 '악'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만든다. 7편의 독립된 단편은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연작의 형태를 통해 극적인 요소를 강화하고 부조리한 현실의 씁쓸함을 배가시킨다. 용서와 복수, 그 간극 사이에서 길 잃고 헤매는 잔인한 해답만이 현실의 무게감을 전달한다.
     

    "악당은 자신이 빼앗은 만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잘 알아. 그래도 기어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 그게 바로 악당이라는 거다."라는 대사를 통해 악의 모호하지만 정확한 실체를 건드리는 야쿠마루 가쿠는 누구나 묻는 궁극적인 질문을 화두로 삼지만, 정확한 답을 요구하거나 제시하진 않는다. 그저 세상엔 이런 질문들이 있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 혹은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되려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답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누구나 그 답을 원한다. 아마 현실의 무겁고도 추한 이면 속에 가려진 한줄기 빛과 같은 인간성만이 구원이 될 것이다. 증오로 불을 지르는 20대가 있는 한편, 사람을 살리려 소리를 지르는 20대가 있다. 그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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