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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리엄 요르츠버그의 '폴링엔젤'
    책|만화|음악 2010. 8. 23. 23:31

    학창시절, 머리 좀 굵어졌다고 선뜻 본 알란 파커의 [엔젤하트]는 당연히 그 시절에 봐선 안될 등급의 영화였다. 기분 나쁘도록 음산하고도 야했으며, 열대야처럼 끈쩍하면서도 찜찜한 구석에 쉽게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찬 몽타주가 종종 지나칠 정도로 내러티브를 간섭하는 알란 파커의 파격성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너무 많이 잘린 공윤의 가위질 덕분에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부두교와 흑마술의 짙은 그림자는 마음 한구석에 행운의 편지 받았을 때 마냥 찰싹 달라 붙고 말았으니, 꽤 오랫기간 노란색 눈동자의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요르츠버그의 소설은 파커의 영화보다 훨씬 더 쉽고 직접적이다. 하드보일드 펄프픽션에, 오컬트의 매력을 한껏 결합시킨 드라이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는 나락에 빠져드는 미물의 무기력한 모습을 너무나 무덤덤하게 표현해낸다. 악의 강함보다 나의 약함을 탓할 수밖에 없는 은은한 저주처럼. 개미지옥에서 버둥거리는 몸짓처럼 소리없는 절규와 끈쩍한 체념의 공포감이 무겁게 짓누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장. 영화 끝에서 시종일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의미를 이제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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