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과 홍콩남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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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13인의 무사'영화|애니|TV 2010. 3. 15. 23:57
인해전술이란 이런거다를 작정하고 보여주는 영화. 밑도 끝도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적들의 향연은 그야말로 MMORPG 노가다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이 영화의 장관이자 백미다. 중국식 상상력과 스케일만이 가능한 대혈전으로 지금까지 보아온 장철 영화의 일당백 싸움 중 가장 압권이다. 게다가 다리 위에서 혼자 그 많은 적들을 상대하다 다리 위에서 꼿꼿이 죽는 적룡은 물론, 형들의 계략에 빠져 말들에 묶여 오체분시(五體分屍)가 되는 강대위의 충격적인 죽음은 영화의 내용을 잊게 할만큼 무시무시하고 처절하다. 내용은 다소 밋밋하고 평이하나 무시할 수 없는 몇몇 시퀀스들이 던져주는 시각적 쾌감은 가히 장철 영화답다. 구도 에이이치의 세밀하고 생생한 액션과는 다른, 남성빛 판타지를 전달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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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대자객'영화|애니|TV 2010. 3. 14. 22:01
그야말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엔딩을 가진 [대자객]은 왕우와 장철의 비극적이고 처절한 남아의 일생을 가장 적나라하게 다룬 작품이다. 다른 작품에서의 그는 그저 죽음을 앞에 두고 싸웠을 뿐 죽음이 오는 그 순간까지 생에 대한 집착을 걸고 결투에 임했으나, 여기선 아예 죽음과 함께 걷는다. 모든 걸 하나하나 정리하고 그 긴 기다림 끝에 자신의 약속과 목적을 이행하러 가는 순간 그는 이미 죽은 셈이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일당백과의 싸움은 타성적으로 나열되는데 그친다. 그리고 그건 한순간 모든 걸 뿜어내고 일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의 발버둥처럼 폭발적이나 허무하다. 하지만 그 몸짓 하나가 만들어낸 의미는 오래오래 살아남아 역사적으로나 영화적으로 많은 이들을 감명시켰다. 적나라한 고어로 대표되는 장철이 이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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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잔결'영화|애니|TV 2010. 2. 26. 18:52
데이빗 보드웰이 가장 좋아한 장철 영화라 했는데,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왕우의 비장미 넘치는 호방함이나 적룡과 강대위의 콤비 플레이가 빛나던 영화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무협 영화에서 중요한 건 빛나는 액션일터. 캐릭터들의 매력은 떨어지지만 독특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기예에 가까운 아크로바틱의 미학적 성취가 한데 어우러져 무협 영화의 재미를 극단으로 밀고 가는 가학적 쾌감이 가득하다. [잔결]은 [오독], [철기문]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장철의 후기작이며, 동시에 신체 훼손 및 파괴의 미학이 절정에 오른 화끈한 막가파 고어 무비다. 악당, 주인공 가릴 것 없이 모두 불구가 되어버리는 희대의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 핸디캡이 곧 능력이 되는 - 반대로 정상인들은 평범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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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철기문'영화|애니|TV 2010. 2. 26. 02:17
GV에서 오승욱 감독도 지적했지만, [철기문]이야말로 관통의 이미지가 가장 극단화돼서 나온 장철 영화다. 그동안 장철은 썰고, 베고, 찌르고, 자르고 온갖 폭력성을 시도했지만, 이 작품만큼 일관되게 관통하는 걸로 밀어붙인 작품도 드물다. 처음엔 젓가락이나 칼, 대나무로 시작해 마지막엔 깃발이 달린 장창이 배를 관통해 피칠갑이 된 깃발이 슬로우로 펼쳐질 땐 경탄의 신음까지 흘러나올 정도다. 그 처연한 아름다움이, 아찔한 공포가 한데 얽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을 준다. 극단적인 고통의 표현과 신체 훼손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生)에 대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의 강렬한 폭력 미학은 후반기 베놈스(Venoms)를 만나며 더욱 더 꽃을 피웠다. 개인적으론 그의 이런 후기작들이 좋다. 잔기교와 아크바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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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포학례의 '마영정'영화|애니|TV 2009. 3. 29. 23:24
장철의 '대부'이자 '좋은 친구들'인 [마영정]은 '액숀'의 탈을 쓴 갱스터다. 시골에서 상경한 싸나이가 어떻게 짱이 되어 성공하고, 망해가는가에 대해 짧지만 신명나게 담아내고 있다. 비록 갱스터 특유의 사회분석적이고 개인성찰적인 드라마와 입체감 넘치는 캐릭터는 부족하지만, 매 단계별 진화하는 액션 시퀀스와 아이디어 만큼은 놀랍도록 신선하고 뛰어나다. 그 넘치는 박력과 비장미, 그리고 눈부신 피칠갑의 삼박자 향연은 정말 '장철'이라는 이름표를 길이길이 아로새길 듯. 마지막에 10분이 넘어가는 (정말 말 그대로의) 일당백 액션은 이 영화의 백미! 너무나도 붉은, 붉은 그 피가 철철 흐르며 도끼 박힌 채로 모든 악당을 상대하는 마영정의 처절한 사투는 장철 액션에 아주 방점을 찍는다. 아드레날린 마구 분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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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흑객'영화|애니|TV 2009. 3. 27. 23:36
선굵고 호쾌한 액숀과 갓 따낸 새빨간 앵두 같은 핏물로 대표(?)되는 장철의 영화는 비주얼만큼이나 강렬한 맛이 있다. 들쑥날쑥한 작품의 편차와 상업성에 치중한 구조에 다소 실망스럽다가도 다 보고 나면 다시 찾게 되는 그런 묘한 중독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싸나이 가슴 속에 깊이 꿈틀대는 정의감과 용맹을 시험하는 듯한 그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은 수컷의 본능을 힘껏 자극한다. 장철은 땀 냄새 짙게 배인 테스토스테론의 멋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들이 필름으로 상영된다기에 귀찮은 몸을 이끌고 영상자료원에 갔다왔다. 오랜만에 남성 호르몬 좀 풍부하게 공급 받고자. [권격]의 후속편이자 한국과 합작영화인 [흑객]이 그 신호탄. 끝에 2~3분 정도가 유실되고, 중간에 한 릴 정도가 급격하게 화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