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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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 Young의 'Sleepless Night'책|만화|음악 2013. 12. 17. 07:31
희영이 2집을 발표했다. EP까지 벌써 3장의 앨범이다. 지난 3년간 그녀는 꼬박꼬박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각박하고 획일화된 음악 시장에서 누구보다 노력하고 사유했다. 부지런함과 성실성은 창의력과 감수성에 꼭 비례한다 할 수 없지만, 그 투쟁의 시간들이 보다 많은 기회와 도전을 준다는 건 자명하다. 희영은 자신의 색깔을 드러냈던 기존 앨범에서 더 나아가 색다른 모습과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시도를 펼쳐보인다. 녹음실을 벗어나 텅 빈 헛간, 낡은 교회를 유랑하며 2트랙 녹음기로 단촐하게 그 기운과 분위기까지 담아낸 것이다. 작은 실수와 잡음들이 들어가도 이를 감수한 이런 시도들은 적적하고 고고한 앨범의 느낌을 더욱 강조한다. 저녁에서 새벽 시간대로 이어지는 녹음을 통해 밤기운마저 담아낸 그녀의 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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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ous Artists의 '그대가 들린다'책|만화|음악 2013. 4. 30. 23:46
며칠째 봄인지 겨울인지 여름인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날씨가 이어진다. 싸늘한 바람에 몸서리를 치다가도 어느새 작열하는 태양에 땀을 뻘뻘 흘리고, 비 한 번 내리면 다시 입김이 서리는 날이었다가 펑펑 눈이 내리질 않나, 자고 일어나면 새초롬하니 벚꽃이 활짝 피어있다. 예년에 비해 부쩍 혼동이 드는 날씨다. 최근 몇 년 동안 봄이 실종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처럼 실성했단 소린 들어보질 못했다. 오락가락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하는 3-4월을 겪고 나니 올해 봄기운은 음악으로나마 접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신청한 게 브라질과 한국 뮤지션 6명이 참여한, 서로에게 음악을 띄워 보내는 독특한 콜라주의 컴필레이션 앨범 '그대가 들린다'였다. 브라질과 봄이란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음반은 따사롭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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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쿠마루 슈고의 'In Focus?'책|만화|음악 2013. 3. 11. 08:16
CD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음이 튀어나오는 동시에 눈앞에 그림이 그려진다. 쨍한 푸른색 하늘이 칠해지고, 그 위로 하얀 구름이 넘실대며, 오색찬란 무지개가 반짝반짝 빛나면, 눈부신 원색의 유럽 어딘가에 있을 마을에 순식간에 당도한다. 거기에는 만반진수 산해진미의 음식이 가득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별스런 장난감과 진기한 물품들이 날 반기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오가는 장터 속 여행자의 모습을 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소박하지만 아날로그의 풍광을 간직한, 조금은 옛스럽지만 활기 넘치는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여행의 풍광 같다. 토쿠마루 슈고의 음악은 그렇다. 그의 사운드는 놀랍도록 회화적이다. 다채로운 악기들과 신기한 음향이 만들어내는 마술 같은 사운드스케이프는 심상을 자극해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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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츠네키치의 '물고기 비늘'책|만화|음악 2012. 10. 4. 06:52
칠팔월의 맹렬한 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짧은 팔만 입고 나서기엔 제법 날이 차가워졌다. 아직까지 더운 기운이 모두 가신 건 아니지만 슬슬 주위를 돌아보며 운치를 찾는 그런 날이 되어간다. 은은한 풀벌레 소리와 하나 둘 떨어지는 가로수 이파리들, 짧아져 가는 낮의 길이. 그 변화에 맞춰 듣던 음악마저 변한다. 깡총깡총 방정맞게 뛰며 세계를 휩쓸던 싸이 스타일의 댄스곡과 길쭉길쭉 시원하고 아찔한 남녀 아이돌 음악이 플레이어에 가득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올 여름은 더 더웠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몸과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힐 여유와 사유가 필요하다. 짜릿한 감각과 여흥은 잠시 접어두고 다가오는 계절에 맞춰 침전과 우수를 택했다. 손에 들린 건 스즈키 츠네키치 鈴木常吉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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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의 'Collapse into Now'책|만화|음악 2011. 4. 10. 22:02
얼마 전 '라디오 스타'를 보니 부활의 5대 보컬이었던 박완규가 나와 예능 첫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이미 그 전의 '위대한 탄생'때 독설로 검색순위 1위에 오르는 반짝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라스에서 보여준 진정한 록커로서의 고민과 자세는 꽤나 멋지고 매력적인 소신을 가진 음악인의 모습이었다. 대중들에게는 예능과 거리가 먼 그의 모습이 4차원스러웠던 김태원의 첫 모습과 겹쳐져 신선하게 느껴졌겠지만, 이를 도약 삼아 그의 음악이, 그 목소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싶다. 그러나 최근 디씨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가 바라보는 상황은 전혀 낙관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국 록의 상황은 굉장히 암울하고 절망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80년대 3대 록그룹 중 하나인 백두산이 며칠전 새 앨범 '러쉬 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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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혁의 'Human Life'책|만화|음악 2011. 4. 2. 22:13
도심을 걷다보면 언제나 마주치는 회색빛 콘크리트 마감에 묘한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복작거리는 차들과 차거운 네온등빛, 시끄러운 소음과 진동, 무관심, 그리고 정체불명의 오지랖과 빠르게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도하는 나는 천상 도시 촌놈이다. 관심과 간섭을 피해 자신의 세계에 침전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감정을 휘발시키고 점점 더 시니컬하고 비관적인 시선을 갖게 되는 내 도시의 삶은 생존전략과 상처를 견딜 수 있게 하는 방패를 넘어 특유의 낭만을 선사한다. 각박하고 매마른 유리 동물원 속 거대 유기체처럼 돌아가는 미친 시스템. 크던 작던 액정으로만 나누는 대화. 우울한 자조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무기. 그리고 건조하고 단단해지는 만큼 강해지는 거라는 믿음까지. 줄곳 눈물과 감정을 지워버린 채 지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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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TE의 'Romantico'책|만화|음악 2011. 3. 19. 05:24
네스티요나(Nastyona)의 음악은 몽환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다. 그루브함 속에 나른한 기운이 시종일관 귓가를 간지럽피곤 한다. 텔레파시(Telepathy)는 펑크와 일렉트로니카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한다. 감각적인 흥겨움이 모호한 패턴 속에 살아숨쉬고 질주한다. 둘 다 범상치 않은 음악 색깔을 지닌 인디 밴드다. 근데 이 두 그룹을 거친 베이시스트 테테(임태혁)의 솔로 EP라니, 도통 어떤 느낌일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베이시스트 특유의 리듬감으로 무장된 펑키한 락 사운드가 아닐까 그저 그렇게 막연히 상상했을 뿐. 허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이 서투른 지례 짐작은 재생지로 만들어진 디지팩을 받아드는 순간 사막의 신기루마냥 스르르 사라지고 말았다. 까끌한 특유의 도화지 느낌에 베이지톤 단색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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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의 'The First Day'책|만화|음악 2011. 2. 9. 14:34
매일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나날.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는 시궁창 같은 현실. 꿈꾸는 것조차 사치일만큼 어려운 형편. 계속된 고난과 시련 앞에서 신데렐라를 떠올린다. 요술봉을 휘두르면 호박을 마차로, 부엌쥐를 근사한 말로, 굴러다니던 먼지를 보석으로, 재투성이 아가씨를 공주로 변신시켜줄 그런 기회나 은인을 말이다. 인생역전.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의 해피엔딩은 이 지긋지긋한 일생에 기분 좋은 마침표와 같은 인장이니, 누구나 두 팔을 뻗어 힘차게 움켜쥐려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동화 속 이야기일뿐,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가난한 예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다리다 굶어 쓰러지고, 자신의 노래를 직접 구워 팔다 뇌출혈로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아직도 어둠 속에서 내일이란 꿈을 꾸며 오..